성인 한 사람의 주변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성인들이 너무 엄격하고 열심히 사는 덕에,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태도를 성인과 같은 삶의 리듬에 맞추기가 쉽지 않기에 생겨난 농담이라 할 것입니다.
평범한 신자들이 성인과 같은 영웅적인 삶과 영성을 살아낸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각종 정신적 · 육체적 질환을 유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끌려 다니며 억지로 하는 것과 나도 그렇게 살아보겠노라 결정하고 수행에 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으니, 성인 옆의 순교자가 되기보다는 성인이 되어볼 마음으로 겸손과 거룩함을 청하며 사는 것도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평범한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성인들은 마치 하늘이 낳은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분들은 하늘로 향하는 길도 알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록 그분들의 삶을 닮는 것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아도, 몇몇 성인들은 매우 잘 알려져 있고 그만큼 매력적인 부분들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의 흔적을 보고 느껴보려고 애씁니다.
아마도 가장 인기 있는 성인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분의 삶에 관한 성인전은 예수님 다음, 아니 예수님의 생애를 소설처럼 다룬 책들보다 더 많은 판본을 가지고 있다니 중세에 실로 엄청 유명세를 떨치셨던 셈입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대부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공경해서 사람들이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려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온 것이고, 현재 교황님도 그러합니다.
열정적으로 자신을 하느님의 도구로 의탁한 성인들의 모습은 일상적으로 잠들어 있는 제 영혼을 수시로 깨어나도록 해줍니다.
저도 청소년사목의 수호성인쯤 되보고 싶다는 망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미 욕심이 들어차 있어서 어려울 듯합니다.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기에 공경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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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남터 순교성지. 한국 천교 순교 성직자 14명 중 11명이 순교한 이곳에, 9위의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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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성인들을 공경하는 데 좀 독특해 보이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성인상이나 성인의 초상화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의 유해를 모셔두고 공경의 예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기 있는 성인의 유해(성해)는 조각조각 나서 전세계 여러 성당에 나뉘어져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문화 정서로는 편히 수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제가 머무는 공동체 근처에 살아 종종 그 중간 지점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만나기도 하는 후배가 성인들의 뼈 조각은 왜 그리 나누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성해 공경’은 가톨릭만의 독특한 문화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문화 안에서 익숙한 성해 공경은 불교에서 큰 스님들이나 모범적으로 사셨던 불자들을 화장한 후 남은 뼈, 특히 사리를 모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사리들을 수습하여 부도(浮屠 혹은 浮圖)에 모셔둡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본보기가 되어준 인물의 유해를 모시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성인의 유해를 통해 성인을 공경하는 배경에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듯,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던 성인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지체였고, 성령의 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성 예로니모는 성인의 유해가 고통을 받아 순교한 거룩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서를 통해 보면, 하느님은 성인들의 유해 혹은 유물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많은 은혜를 내리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살갗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가 치유의 기적을 일으켰던 사건(사도 19,12), 엘리야의 옷과 엘리사의 뼈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난 이야기(2열왕 2,14; 13,21)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가톨릭대사전 참조).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뉜 뒤, 동방교회에서는 1084년(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성해 공경이 정식으로 인가되었으며, 성인의 유해를 옮겨가거나 분할하여 안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서방교회에서는, 성해 공경이 초기교회의 지하묘지인 카타콤바와 연관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곳에 안치된 이들은 거의 모두 신앙을 지키려 했던 이들이기에 자연스럽게 공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서방교회에서 성해를 옮겨가거나 분할하여 안치하는 것이 허용된 시기는 8세기 무렵입니다. 787년 니체아 공의회에서는 모든 교회가 반드시 성해를 모신 뒤, 축성하여야 함을 천명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 시기부터 성인들의 뼈가 분할되는 일이 가속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유해 공경은 본질의 뜻을 망각하고 지나치게 과장되어 미신적으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릇된 태도 때문에 교회 안에서 한때 이 공경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 스콜라 학자들이 그 신학적 토대를 마련해줬습니다. 성해 공경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되었습니다.
교회법에 의하면 거룩한 유해는 팔 수 없으며, 중요한 유해와 성화상은 주교의 허가 없이는 양도될 수 없습니다(교회법 제1190조 참조).
성인의 유해는 성당 안에 안치하거나 제대의 성석 안에 안치합니다. 성석은 순교자의 유해(遺骸)가 들어 있는 돌판을 가리키는데, 옛날에는 순교자의 유해를 제대 중심에 안치했습니다.
그것은 초기 교회 시대에 카타콤바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드렸던 사실에서 유래합니다. 오늘날에는 제대에 반드시 성석을 두지는 않습니다.
성인들의 뼈를 저렇게 나눠놓으면 나중에 부활할 때 성인들은 몸이 성치 못한 채 부활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부활에 관한 힌트는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부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셨기에 제자들이 처음에 잘 몰라봤다는 걸 기억해 보시면 됩니다.
성인들은 하느님 곁에 가신 뒤에도 하늘로 열린 길을 찾아오라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나눠주는 이들이라 봐도 좋겠습니다.
그들의 유해가 헨젤과 그레텔의 빵 조각처럼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빵과 육신이 이렇게도 연결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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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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