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사 안에서의 성요셉’
성서는 요셉에 대하여 아주 적게 언급하고 있다. 소수의 구절에서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마태 13,55; 루가 3,23; 요한 1,45; 6,42)라고 묘사되고 있으며, 마태오 1-2장과 루가 1-2 장에서 조금 소개되고 있는 정도이다.
그에 대한 언급이 적을지라도 구원사 안에서 그의 역할은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구세주의 아버지로서 참으로 특별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요셉(Joseph)은 희브리어 'Yosep'(더하다)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하느님께서 후손을 더하신다' 라는 뜻이다. 나자렛의 목수 요셉은 그의 이름을 야곱의 아들 요셉(창세 30,24 참조)에게서 택한 것으로 당시 흔한 이름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으나 법적인 남편이며 예수님의 아버지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으나 아버지 요셉을 통하여 다윗의 후손이 되셨다 (마태 1, 18-25 참조). ‘동정 마리아의 배필'로서의 성요셉’
요셉은 구세주 탄생에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셉은 '법대로', '의롭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대로 현재의 상황에서 '법대로'한다면 마리아를 공동체에 고발하여 돌에 맞아 죽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따를 것인가? 요셉의 고민과 갈등은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의를 따르면, 남자는 다른 누구의 아기를 임신한 약혼녀를 세상에 폭로하고 법에 따라 그녀가 돌에 맞아 죽도록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을 거슬렀고 신의를 깨트린 배신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돌에 맞아 처참하게 죽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 8,7) 요셉이 법대로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탄생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에서 법은 최소한이며 사랑은 최대한이어야 한다. 십계명과 교회법을 완벽하게 준수했다고 진정한 복음적 삶을 산 것은 아니다. 단지 기초를 놓았을 뿐이다. 기초를 놓았다고 집을 지은 것은 아니다. 요셉이 깊은 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난다. 꿈속에서 들리는 천사의 음성이 믿음의 사람 요셉의 마음과 정신을 바꾸어 준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정의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길을 알려 준다. 요셉은 믿음 안에서 놀라운 은총을 체험한다. 그 안에 놀라운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다. 사랑하는 마리아를 법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수용한다.
요셉은 '법'에서 시작하여 '사랑' 안에서 삶의 완성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의 전형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로'서의 성요셉’
마태오 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바로 요셉의 족보이다. 그것은 성조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요셉에게서 끝나고 있다. 복음서는 요셉의 뒤에 다윗의 자손을 한 사람도 더 기록하고 있지 않다. 요셉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에 의해 모두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마태 1,16) 이 짧은 구절은 매우 중요하다. 요셉의 신원과 구원사 안에서의 위치 그리고 사명을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셉을 통하여 다윗 가문의 자손, 메시아의 출생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여러 가지 예언이 일거에 실현되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인 요셉은 육적으로 친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법적으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됨으로써 예수님을 다윗 가문에 묶어 주었으며 이로써 예수님은 성서에 쓰여진 대로 다윗의 후손이란 칭호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셉은 많은 곤경과 난관 속에서도 예수님의 양아버지의 역할을 겸손 되이 그러나 용감히 수행하였다.
마리아가 예수 아기를 낳은 때는 마침 베틀레헴에 호적 등록하러 갔던 여행 중이었다. 요셉은 마리아가 해산할 수 있는 방 한 칸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겠지만 결국 빈 마굿간 밖에 찾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루가 2,1-7).
그는 또한 헤로데를 피해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국 땅 에집트로 피신하여 말할 수 없는 곤경을 겪었을 것이다. 낯선 땅에서 가족과 피난살이의 고생이 얼마나 컸겠는가!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 와서 요셉은 성 가정의 방패역할을 하면서 공적으로 예수님의 생부처럼 등장하며 활동하고 생계를 위해 열심히 목수 일을 했다.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부모에 대해 그의 복음 2장 여러 구절에서(27절, 41절, 43절) 언급하고 있다. 또한 "너의 아버지와 내가"(루가 2,28)란 표현은 요셉을 마리아와 함께 진정한 부모로 간주하고 있다.
예수 아기의 법적 아버지로서 요셉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권리(마태 1,21.25)를 행사하고 아들에게 할례를 시키며(루가 2,21), 성전 정화 예식 때 참석한다(루가 2,22).
‘교회의 수호자'로서의 성요셉’
성요셉에 대한 신심은 교회 안에서 일찍부터 퍼져 있었지만 공식적 신심은 다소 늦어졌다. 늦어진
이유는 마리아의 남편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요셉의 역할이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과
예수아기의 성령으로 인한 잉태의 교의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4세기부터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중세기에 와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좀 더 알고자 하는 열망이 요셉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도록 했다. 그리고 13세기에 들어와서 성요셉에 대한 신심은 대약진을 이루었다. 요셉은 지도자들, 아버지들, 가난한 이들,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이들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수호자로 모셔졌으며 또한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그를 수호자로 정하여 선언하게 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1870년 12월 8일 회칙[Quemadmodum Deus]를 반포하면서 성요셉을 성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우리 한국 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요셉을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1) 노동자의 수호자
요셉은 목수 일을 하던 노동자로 일하면서 성가정을 보살피셨으며 예수님도 아버지의 목수 일을 배우고 도우면서 노동하셨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손수 일하심으로써 노동의 품위를 높여 줬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5월 1일에 '노동절'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정함으로써 요셉은 노동자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2) 임종자의 수호자
성요셉을 임종하는 이들의 특별 수호자로 여기며 그분의 도움을 청하게 된 민중 신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신심은 복되신 성모 마리아뿐 아니라 특히 주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요셉의 임종을 지켜보며 보살펴 드리셨을 것이기에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죽음을 맞이하셨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 체험을 한 성요셉이 우리가 죽을 때에도 그러한 보호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강력히 기도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확신하며 그분의 전구를 청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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