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7월 9일 가해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롱 사제와 순교자들)

dariaofs 2014. 7. 9. 00:38

 

 

 

성 자오롱(趙榮)은 1746년 중국 귀주(貴州)에서 태어났으며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이고 원래 성은 주(朱) 씨였다. 그는 젊은 시절 좀 방탕한 생활을 했고 20세 때에 옥졸(獄卒)이 되었다.

 

그 당시는 천주교가 사천(四川) 지방에 막 전해졌을 때라 신자들이 조금씩 생길 때였는데, 1772년 갑자기 박해가 일어나 많은 신자들은 잡혀가 감옥에 갇혔다.

2년 뒤 매 신부라는 선교사가 새 영세자들을 격려하러 그 지역에 갔다가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매 신부가 열정적으로 진리를 전파하는 모습에 많은 죄수들이 감동했는데, 옥졸로 있던 주영(朱榮) 역시 그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아 며칠 안 돼 교리를 배워 믿게 되었다. 나중에 매 신부가 감옥에서 나갈 때 그를 배웅하면서도 계속 교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매 신부는 1776년 그에게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견진성사도 베풀었다.

매 신부는 그가 신앙심이 굳건한 것을 보고 많은 일을 부탁했고 라틴어도 가르쳤다. 그리고 그에게 성인들의 책을 많이 읽도록 했다. 다른 신부 한 명도 그의 믿음을 보고 위독한 아이들에게 유아세례를 주게 하는 등 많은 일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성실한 그의 성격과 굳건한 믿음을 보고 주교에게 사제서품을 청했다. 그래서 1781년 음력 5월 10일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품을 받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고 성도 조(趙, Zhao) 씨로 바꿨다.

사제가 된 뒤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자오롱은 착실하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하며 간절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박해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1815년 1월 27일 향년 69세의 나이로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

 

그는 1900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19명의 동료 중국 순교자들과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강론   :   (마태 10,1-7)

 

<사도, 사도직>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일은(마태 10,1)

하느님의 밭에서 수확할 일꾼들을(마태 9,37) 뽑으신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품삯을 받으면 그만인 일꾼들이 아닙니다.

또 계약을 맺고 일하는 소작인들도 아니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종들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는 자녀들입니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이 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와 일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일꾼'이라고 표현된 것은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밭은 자녀의 밭이고, 아버지의 일은 자녀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에서 따로 열두 명을 뽑아서(루카 6,13)

그들을 사도로 임명하신 것은 그들에게만 일을 시키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도들은 '사도의 은사'를 받아서 사도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은사를 받아서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1코린 12,27-28).

이 모든 일은 사실은 하나의 일, 즉 아버지의 일입니다.

각자 맡은 임무와 직책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열두 사도의 명단에 배반자 유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언제나 우리의 눈에 거슬립니다.

왜 복음서 저자들은 사도들의 명단을 기록할 때

마티아의 이름을 적지 않고 유다의 이름을 그대로 적었을까?

 

사실 그대로 정직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사도들 안에서 배반자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기 때문에 유다의 이름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는

'아버지의 일은 곧 자녀의 일'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유다의 배반과도 연결됩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28-31)."

 

원래 이 말씀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는 않는 유대인들을 비판하시는 말씀이지만,

일하겠다고 대답만 하고 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은 아들 속에

배반자 유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일을 한 맏아들은

죄 속에 있다가 회개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맏아들이 처음에 싫다고 대답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대답도 잘하고 일도 잘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그런 아들은 없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대답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아들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그런 아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언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루카복음에 있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도

아버지의 일은 자녀의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사도직 수행과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비유입니다.

 

그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처음에 일하기 싫어서 멀리 떠나버린 것은

'아버지의 일은 곧 나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큰아들은 계속 성실하게 일했지만, 자기가 아들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자기는 종처럼 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루카 15,29).

그는 분명히 일을 하긴 했는데 자녀로서 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두 사도의 명단에 배반자의 이름도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배반자가 될 수 있고, 멸망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배반자 유다 대신에 마티아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마티아는 유다의 후계자도 아니고 후임자도 아닙니다.

배반자 유다의 사도직은 그 자신의 잘못으로 무효가 되었고,

그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마티아는 공석으로 남아 있는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탈락하면 우리에게 주어졌던 은총은 다른 사람에게 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유다를 사도로 뽑으셨을까?

이 의문은 오늘날에도, 또 앞으로도 계속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유다가 예수님께

"왜 저를 사도로 뽑으셨습니까?" 라고 따져 물었을지도 모르고,

또 자기를 사도로 뽑지 않았다면 배반자가 안 되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세례를 안 주었다면 내가 냉담자가(또는 배교자가) 안 되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를 낳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불효자식이 안 되었을 텐데,

왜 나를 낳았습니까?" 라고 부모에게 따지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유다는 억지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원했던 일이었고,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기꺼이 응답했습니다.

그런 유다가 배반자가 된 것은 그 자신이 배반을 했기 때문이지

예수님께서 그를 사도로 뽑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