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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시시 주교의 뜻에 따라 원래 의사이며 순교자인 다미아노 성인에게 7-11세기 중에 봉헌된 성당이다.
글라라 성녀는 초기 글라라회 수녀들과 함께 1211-1253년에 이곳 성지를 생의 거처로 삼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211년에 글라라 성녀에게 이곳 ‘가난의 성채’에 거처를 마련해주려고 방문하고 성녀와 초기 동료 수녀들이 자리 잡을 때가지 머물렀다.
오랜 극기와 금욕 생활로 1220년 병이 든 프란치스코는 다시 이곳을 찾았다. 오상을 받은 성인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1225년 겨울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고, 오래 머물면서 수녀들에게 텃밭을 만들어 주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때 ‘태양의 찬미가’를 썼다. 성 다미아노 성지는 프란치스코회의 두 번째 수도회의 보금자리일 뿐 아니라 ‘이탈리아 시의 요람’이다.
다미아노 성당은 T자형의 구조를 띄고 있다. T자형 중앙 축에는 아래층 성무일도 기도실 (Coro)와 성전, 위층 거처와 기도실이 있다.
가로 축에는 아래층 글라라 식당과 성무일도 기도실, 위층 글라라 성녀의 의무실이 있다.
1202년 아시시 주민들은 콜레스트라다 (Collestrada) 근처에서 페루지아 (Perugia) 군대와 정면 충돌한다.
20세 청년 프란치스코는 이 전쟁에 참여하다가 포로가 된다. 일 년 동안 처참한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이 시간은 프란치스코에게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준다.
하지만 스폴레토 (Spoleto)에서 밤에 “프란치스코, 주인과 하인 중에서 누구를 섬기는 것이 좋으냐?”는 신비스런 목소리를 접하고는 가던 길을 멈췄다.
그리하여 영광스럽게 되고자 하는 그의 꿈이 산산 조각나고 만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로 되돌아온다. 주님께서는 아시시에서 프란치스코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하실 것이다.
위대한 꿈을 포기한 프란치스코는 커다란 슬픔에 빠진다.
주위 모든 사람들과 접촉을 모든 끊고 칩거한다.
그런 어느 날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다가 적선을 청하는 나병 환자와 대면하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순간 거부했지만 말에서 내려와 나병이 걸린 형제를 껴안고 입맞춤을 한다.
이 체험은 프란치스코에게 너무도 큰 내면의 기쁨을 선사하였고 그는 평생 이를 마음속에 간직한다. 그 입맞춤은 기도와 생명의 단맛이었다.
프란치스코는 나병 형제와의 포응이 고통 받은 주님의 몸을 감싸 안은 것임을 알게 된다. 그 기쁨은 그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메아리친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시는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는다. 프란치스코는 여린 손으로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도시를 부수고 무기를 휘두르는 손이 아니라 성당을 보수하고 평화를 전하는 주님의 도구가 된다.
에피소드
지금은 정리정돈을 끝난 그 수련원에 잠비아 출신의 새내기 지원자 십여명이 둥지를 틀고 도 닦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지난 주말에 2년간의 로마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기 전에 2박 3일 피정을 이곳 수련원에서 했다.
이번 피정은 참으로 특이했다. 그 수사 신부의 부탁으로 수도회 일상을 담는 사진 봉사를 더불어 진행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각 프레임 안으로 모습을 담는 과정에서 많은 성찰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바쁜 마음 중에도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에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글 최금자, 사진 김용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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