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에 능숙한 유대인으로서 아마도 유대 나라 밖에서 태어난 듯하나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세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부제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았고,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하였다.
또한 그는 키레네(Cyrene)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대인들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Moyses)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는 체포되어 의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자 의회 의원들은 성 스테파누스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시 외곽에서 돌을 맞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사도 6-7장 참조).
사도행전 8장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장사지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415년 8월 3일 루키아누스(Lucianus) 신부가 예루살렘에서 15km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Kafr Gamala)에서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를 발견하였는데, 이 유해는 에스파냐의 메노르카(Menorca), 아프리카의 히포(Hippo)와 예루살렘, 시온(Sion),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거쳐 로마(Roma) 등으로 나누어져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성 스테파누스 기념 성당이 건축되어 이 성당들에서 많은 기적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 공경은 세계 각 곳으로 퍼져 나갔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경부터 1955년 공식 전례에서 제외될 때까지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가 발견된 8월 3일을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하였다.
강론 : (마태 10,17-22)
<첫 순교자>
교회 역사에서 어떤 일을 첫 번째로 한 사람은
항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첫 번째' 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걸었던 키레네 사람 시몬은(루카 23,26)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루카 9,23)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몬 자신이 그것을 의도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죄수 하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가신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루카 23,43).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증언한 사람입니다(요한 20,18).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첫 번째 사람입니다(요한 20,28).
스테파노 순교자는 예수님 때문에,
또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첫 번째 순교자입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죽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7,55-56)."
스테파노가 하느님과 예수님을 본 것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그를 마중 나오셨음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라고 하신 당신의 약속을 지키셨음을 뜻합니다.
스테파노가 순교 전에 행한 설교도 중요하지만,
죽기 직전에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한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인의 믿음과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박해자들은 스테파노의 육신을 죽였을 뿐입니다.
스테파노의 영혼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영접을 받으면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스테파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8)."
그 장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주목해야 할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스테파노가 자기가 본 것을 증언할 때
박해자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는 구절입니다(사도 7,56).
그들은 스테파노가 본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스테파노의 증언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안 들으려고 큰 소리를 질렀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 모습에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예수님 말씀이(마태 13,13) 떠오르는데,
그들은 못 보고 못 들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안 보려고 했고, 안 들으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안 보려고 했기 때문에 못 보았고,
안 들으려고 했기 때문에 못 들었습니다.
순교 성인들의 생애를 기록한 책을 읽다 보면,
거의 대부분 내용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런 내용이 비슷하거나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전을 읽다가 전부 다 똑같은 이야기뿐이라고 실망할 수도 있고,
지루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
순교 성인들의 이야기가 비슷하거나 같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같으니까 생활도 같거나 비슷해지는 것이고,
순교자들이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가 같으니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도 같거나 비슷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순교자들이 모두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뒤를
똑같이 따라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스테파노처럼
하느님과 예수님의 영접을 받으면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스테파노처럼 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최종목적지는 하나이고, 그곳까지 가는 길도 하나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고,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간 길이고,
이미 수많은 신앙인들이 간 길입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가시밭길이 나올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좀 더 편한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들 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신앙을 버리면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축일을 지내는 것은
우리도 그들 뒤를 따라가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살았던 대로 우리도 살 수 있다는 뜻이고,
그들이 했던 일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들이 얻은 생명을 우리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순교 성인들은 우리가 흉내도 낼 수 없는 초능력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거의 대부분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는데,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분들이고,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걸어가야 하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을 걸었던 분들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라는 예수님 말씀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따라가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예수님 뒤를 따라갈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노력하기만 하면."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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