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서부 푸아티에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귀족 집안 출신이었으나 스스로 성서를 공부한 뒤에 이교 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 이미 결혼하였기 때문에 아내의 반대를 뿌리치고 350년경 고향 푸아티에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강력하게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배격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Phrygia)로 추방되었는데, 그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리스의 신학 사상에 심취하여 대 신학자로 성장하였다.
그는 서방 교회의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로 공경을 받았다.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삼위일체론”(De Trinitate)이다. 또 그는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음률을 붙인 찬미가를 활용하였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와 시편의 주해서를 만들었으며, 그의 제자이자 후에 투르(Tours)의 주교가 된 성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와 함께 갈리아 지방에서 수도원 제도를 장려하였다. 그는 367년 또는 36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851년 5월 13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강론 : (마르 1,21ㄴ-28)
<권위 있는 가르침>
어느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마르 1,22).
또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마귀 들린 사람을 보시고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또다시 놀랍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
1)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는 말은 '힘이 있는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거역할 수 없는,
그런 '하느님의 힘'이 들어 있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힘'은 하느님의 '주권'에서 온 힘입니다.
하느님은 한마디 말씀의 힘으로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이신 분이고,
한마디 말씀의 힘으로 세상을 없애시거나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분이시고,
하느님이신 분이고, 하느님의 '주권'을 함께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연히 하느님의 말씀처럼 힘이 있는 말씀이고,
하느님의 권한과 권능을 드러내는 '힘 있는 가르침'입니다.
인간 세상을 보면, 아무런 권한과 권능도 없으면서
물리적인 힘만 내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윗과 싸웠던 골리앗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골리앗은 엄청나게 힘이 센 거인이었는데(1사무 17,4-7),
나이 어린 소년 다윗은 돌멩이 하나로 그를 죽였습니다(1사무 17,50).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나는 ...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1사무 17,45-46)."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다윗은 골리앗보다 더 힘이 센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통치자들이 권력의 힘으로 백성들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권력은,
더욱이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악한 권력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권력은 언젠가는 모두 허무하게 멸망하게 됩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권위주의적으로 정치를 했던 독재자들은
전부 다 그렇게 망했습니다.
2)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는 말에는 '하느님의 참말'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진리'에 대한 '진실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권위 있는 가르침이고, 힘이 있는 가르침입니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요한 7,16)."
이 가르침은 더하거나 뺄 것도 없고, 꾸밀 것도 없는 가르침입니다.
유명한 학자들이 한 말을 인용해서 가르침의 근거로 삼을 필요도 없고,
어떤 학문의 이론으로 내용을 보충할 필요도 없는 가르침입니다.
마귀들은 원래 거짓말만 하는 존재입니다.
거짓말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참말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명령이 하느님의 권한과 권능에서 온 말씀이었기 때문이고,
또 '하느님의 참말'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월 13일의 복음 말씀을 보면, 마귀가 예수님께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 자체는 겉으로 보기에는 참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면서 해야 '참말'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 마귀가 하는 이런 말은 거짓말입니다.
'복음'은 참말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전하는 복음은 참말이 아닙니다.
복음을 진심으로 믿고,
그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전하는 복음만이 참말이 됩니다.
만일에 '삶'이 거짓이면, 그런 사람이 전하는 복음도 거짓말이 됩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일 때가 많은데,
거짓말로 잠깐 동안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유지하는 권력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힘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3) '권위 있는 가르침'이라는 말에는
'하느님의 사랑의 가르침'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도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사랑이신 분이고, 예수님의 가르침도 사랑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이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힘입니다.
마귀들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항상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서로 의심하게 만들고,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미움은 사랑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들은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정략적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미워하게 만들면서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마귀들과 같은 행동입니다.
잠깐 동안은 그런 악한 방법이 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무너지고 맙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없습니다.
혹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되어버리고, 아무도 그 사람의 말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말에도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듣는 쪽에서 그 말이 '빈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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