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2월 19일 나해 <설>

dariaofs 2015. 2. 19. 07:10

 

                                                                                     (루카 12,35-40)

 

<복>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 12,35)."

 

이 말씀은 종말과 재림에 관한 말씀이고,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말씀으로 생각한다면,

주님 앞으로 가는 여행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 경우에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길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되고,

등불을 켜는 것도 여행을 준비하는 일이 됩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우리는 종말과 재림이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믿고 있지만,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지는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그리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도 않은 때' 라는 말은, 그날이 언제인지 인간은 계산할 수 없고,

예상하거나 예측할 수도 없음을 뜻합니다.

 

이 말씀을 인생의 마지막에 관한 말씀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뜻은 같습니다.

언제 주님 앞으로 가서 심판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지금', 그리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즉 회개하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주님 앞에 서게 되면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좋은 날, 설날의 복음 말씀으로 왜 이런 말씀이 정해졌을까?

아마도 흐르는 세월(시간)에 대해서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말씀을 복음 말씀으로 정한 것 같습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설날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을 주신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묵상하라는 것.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졌다고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어리거나 젊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져서 서러워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시점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고,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좋아할 것도 없고, 서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평균 수명은 글자 그대로 평균 수명일 뿐이고, 각 개인의 수명은 아닙니다.

 

설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하는데,

만일에 임종을 맞이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인사를 해야 할까?

어떤 복을 빌어 주어야 하나?

그래도 설날이니까 모르는 척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하느님 앞으로 잘 가라고 빌어 주어야 할까?

반대로 우리 자신이 임종을 맞이한 입장이라면,

어떤 인사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복을 빌어 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그래도 설날인데... 강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이상한 방향은 아닙니다.

신앙인에게 최고의 복은 하느님 앞에서 영혼의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는 동안에도, 죽어서 심판을 받게 될 때에도.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8)"

 

더 많은 돈이 생기는 일을 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돈 때문에 참 평화를 잃는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평화를 잃는다고 해도 돈이나 많이 생기기를 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이 복일까?

권력이 크면 책임도 크고,

그 책임 때문에 평화를 잃고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력을 잘못 사용하면 혼자서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평화의 인사'를 하는 것은 형식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다른 복이 없기 때문에 서로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설날에만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서로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몸만 편안한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마음과 양심과 영혼이 모두 편안해야 평화입니다.

그러니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혼자서만 편안한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진짜 평화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울고 있고 아파하고 있는데

권력과 재물을 움켜쥐고 혼자서만 편안하게 지낸다면,

그 편안함은 결코 평화가 아니고,

그런 사람이 혼자서 살고 있는 그곳은 지옥입니다.

그러니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지금' 누리고 있다면,

인생의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남은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진다고 서러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다른 것만 찾는 사람은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는 것이, 한 해, 또 한 해 세월이 흐르는 것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안타까울 것입니다.

아니면 몹시 허무해질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이룬다고 해도 허무해질 것입니다.

그 목표라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또 하느님 앞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것은 모두 먼지일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