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 20-33 )
예루살렘에 올라 온 사람들 중에 끼어있던 그리스 사람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필립보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유다 사회의 틀을 넘어 이방인 세계에도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도,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을 만나 감동하고, 격려를 받고 정신적인 위로를 받는다고 하는 것, 그것은 나약한 우리들 인간에게 있어서는 때때로 힘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예수님께서 바라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에 흥분되어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큰 군중을 피해서 산으로 피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분의 설교에 감동해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청년은 뿌리치기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구세주로서의 중심이 되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그분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가져와서 하느님을 찬미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매력이 있는 존재를 접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기분의 발로라고 해도 좋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 이상의 것을 바라셨던 것입니다.
즉 생활 태도의 전환, 가치관의 전화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도 우리들 인간에게 있어서도 가장 소중한 가치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도 안정도 아닙니다. “자기 부정”을 동반한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하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며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생활 태도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한 그리스 사람들이, 만일 사형선고를 받고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과연 뵙고 싶다고 하였을까?
하느님께로 이어지는 길은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가운데 있다고 하는 점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의 전환. 그것이 복음입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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