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6-38)
<응답과 순종>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주님의 탄생을 예고한 일은
이제 곧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준 일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그 '큰일'을 하신다는(루카 1,49) 예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수많은 처녀 가운데에서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은
마리아가 가장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유일한 처녀였다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 라고 부르면서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신다고 말한 것이(루카 1,28)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천사가 한 말은 마리아가 은총을 받을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또 마리아가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은총을 주시고, 함께 계셔 주신다는 뜻이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신다는 뜻은 아니고, 마리아도 함께 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메시아 잉태와 탄생, 또 메시아께서 하실 일에 관해서 설명하는
천사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의 뜻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나도 원합니다.
그래서 종이 순종하듯이 주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입니다.
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리아 자신도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마리아의 응답과 모세의 응답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집트로 가서 백성을 구하라는 임무를 주셨을 때,
모세는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서
못 가겠다고 말합니다(탈출 4,10).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설득하십니다.
그래도 모세는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말합니다(탈출 4,13).
그랬다가 하느님께서 모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자
그때서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합니다(탈출 4,14-18).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는 일을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자신도 원하는 일이었지만,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때에는 아직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또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동정녀로서 아기를 잉태하고 낳는 일뿐만 아니라,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겪게 될 많은 고난들을...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은
단순히 예수님 잉태와 출산에 대한 응답과 순종만은 아니고
그 후에 겪게 될 모든 십자가에 대한 응답과 순종이기도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좋은 말'만 했지만,
마리아가 자신이 겪게 될 고난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두려움을 극복했고, 응답했고,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은 일생 동안, 지상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흔들림 없이 이루어진 일입니다.
마리아의 생애는 예수님의 지상 생애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어머니가 서 계셨다고 기록했습니다(요한 19,25).
또 사도행전 저자는
예수님 승천 후 교회 공동체 중심에 어머니가 계셨음을 기록했습니다(사도 1,14).
이것은 모두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이 생애 끝까지 계속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주님 말씀에 대한 응답과 순종을 '끝까지'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배반자 유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분명히 유다도 처음에는
"나를 따라라." 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것이고,
다른 사도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멈추거나 다른 길로 간다면,
처음부터 따르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묵시록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묵시 2,4-5)."
이 말씀은 에페소 신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인데,
오늘날의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여기서 등잔대를 치워 버리겠다는 말은 교회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뜻입니다.
(개인으로 생각하면, 신자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뜻입니다.)
자격을 잃는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느님께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 들어가서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즉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의 믿음과 사랑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혹시 중간에 추락했더라도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믿음과 실천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한 번 하신 일을 취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추락한다면
우리 스스로 '선택과 부르심'이라는 은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빼앗아 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버리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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