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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한국인, 그리고 이주민] (1) 이주민의 일상과 우리의 시선

dariaofs 2015. 4. 10. 19:45

이주민,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불편한 이웃’이 있다.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들, 바로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이다.

국내 거주 이주민 170만 명 시대. 우리는 이주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평화신문은 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이상민 신부)와 공동으로 ‘다문화 시대 이 땅의 한국인 그리고 이주민’을 기획, 4회에 걸쳐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민의 현실과 함께 선주민(그 지역에 먼저 살고 있던 사람)과 이주민이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본다.

무관심과 반감

3월 21일 토요일 오후. 수원역 광장은 주말을 맞아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베트남에서 온 티엔(38)씨도 오래간만의 휴일에 친구를 만나러 나온 길이었다.

“화성…(가는) 버스…. 어디서 타요?”

한국말이 서툰 티엔씨는 용기를 내서 버스정류장에 있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스윽.’ 티엔씨 쪽으로 고개를 돌린 행인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차갑게 시선을 거뒀다. 말을 섞기 싫다는 암묵적인 표현이었다.

티엔씨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면 그냥 모른 척할 때가 많다”며 “마치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은 85만 명. 대한민국의 국경은 이미 세계에 개방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은 아직도 굳게 잠겨 있다.

2001년 필리핀에서 온 마릴린(42)씨도 한국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말을 금방 못 알아들으면 점원이 갑자기 모르는 척하고 돌아가 버린다”며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나를 한국 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원과 안양, 의정부에서 만난 이주 노동자들은 “과거보다는 이주민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상생활 곳곳에서 무관심과 반감을 느낀다는 것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이주민이 이웃이라니?


교회는 하느님의 자녀인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자들조차 이주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

경기도의 한 본당으로 이주민 후원 미사를 갔던 김창해(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신부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주민에 대해 관심과 도움을 호소하는 강론 시간에 신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가 하면, 신부에게 대놓고 “우리도 힘든데 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느냐”며 반감을 드러낸 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이주민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교회에서조차 이주민을 거부하고 있다.

 

김 신부는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이주민이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족하다”며

 

 “이주민과 공존하면서 우리 사회가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데 이들을 불편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좀처럼 이주민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이주민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이들을 투명인간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다.

교회 이주사목 관계자들은 “무관심과 적대적 태도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주민들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제자매이자 가장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사랑에는 국경이 없기에 - 이주민 사목은 '보편적' 교회 정신과 맞닿아

이주사목을 하다 보면 신자들에게서도 “한국에도 불쌍한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외국인들까지 돌보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주민은 말과 문화가 달라 함께 살기가 불편한데, 왜 이주민과 함께 살아야 하고 왜 이주민을 사목해야 할까?

 

사실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정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를 보자.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원죄를 범하고 낙원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역시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여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고향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가 살았다.

 

또 모세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백성을 데리고 탈출하여 40년간 광야를 떠돌았다.

 

 그리고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에 패망한 이스라엘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약 50년의 유배생활을 한 뒤 귀환하였다. 즉, 이렇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떠돌이의 역사이다.

신약의 역사는 어떤가?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헤로데 대왕의 살해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가셨다. 예수님의 인생은 떠돌이로 시작됐다. 그리고 양부 요셉은 이 난민가정의 가장이었다.

 

도대체 요셉은 어떻게 이 가정을 부양했을까? 아마도 그의 직업인 목수 일을 했을 거다. 그렇다면 요셉은 요즘 말로 이주 노동자다. 또 성모님 역시 이주 여성으로서 고된 타국생활을 겪으셨을 터이다.

 

한편 예수님의 공생활도 정착과는 동떨어진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나그네 생활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라고 하시며 나그네 환대도 하늘나라에 드는 조건임을 밝히셨다.

 

이어서 사도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로 흩어졌다.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이주와 이주민의 역사였다.

한편, 50년 전에 반포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75항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은 조국에 대하여 충실하고 너그러운 애국심을 길러야 하겠지만,

 

너무 편협된 정신을 버리고 인종과 민족과 국가 등의 여러 가지 관계로 서로 결합한 인류 가족 전체의 복지를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톨릭이라는 말의 뜻을 상기하자.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인종, 국적, 성별, 나이, 신분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살겠다고 모인 이들이 가톨릭교회이다.

 

참된 가톨릭 신자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그리고 국경 없는 사랑은 구원으로 이끈다.        

▲ 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장, 파주엑소더스 센터장

이상민 신부(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장, 파주 엑소더스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