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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북녘 형제들 바라보는 시선, 이젠 바꿔야

dariaofs 2015. 6. 22. 13:19
냉대에 눈물 흘리는 북녘 형제, 눈물 닦아주고 먼저 다가가야




한 형제라고 생각했는데…

2008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을 때까지만 해도 이수경(가명, 35)씨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토록 꿈꾸던 자유. 더는 누군가에게 감시받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 마주한 세상은 너무나 차가웠다. 한국 사람들에게 ‘탈북자’는 결코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씨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남북이 분단된 70년 동안 남한과 북한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는 것을 말이다.

기대했던 한국에서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을 붙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조차 벅찬 그에게 ‘감상은 곧 사치’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업을 가지려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북한에서 나온 대학 학위나 자격증은 남한에서 전혀 쓸모가 없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어렵사리 취업한 곳에서는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항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배치됐다. 사무 업무를 해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쪽으로 배정받았고, 식당에서는 항상 주방일을 했다.

이씨는 북한 땅을 넘을 때만 해도 남한 사람들을 한 형제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외모에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한 마디에 이씨는 이방인이 됐다. 형제가 갈라져 지내온 시간 동안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는 하지 맙시다. 차별도, 증오도

“우리도 지금 살기 어려운데 왜 자꾸 북한 사람들을 받아주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세금만 축내는 거 아닌가요? 제 앞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북한 사람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김 요한, 32, 회사원)

올해 5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2만 8054명(통일부 기준). 대한민국 인구의 0.05%를 차지하는 북한이탈주민은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사는 미래를 보여주는 작은 표본이다. 


하지만 이들에 관한 국민 인식은 ‘과연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들게 할 만큼 부정적이다.

11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게 불안하다”는 반응부터 “우리도 살기 힘든데 정부에서 이들을 무조건 받아주니까 자꾸 넘어온다”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통일연구원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북 통합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적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냐’는 질문에 경계 대상(5.96점/10점 만점)이라는 답변이 가장 높은 점수를 보였고 2위가 적대 대상(5.57점), 3위가 지원 대상(5.01점)이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사무국장 오혜정 수녀는 “북한 정권이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것을 마치 북한 사람들도 우리에게 해를 입히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정권과 주민들을 동일시하는 접근이 북한 사람들마저 우리의 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김정은에게 돌아가라’ ‘한국인들이 낸 혈세로 호의호식하니 살기 편하냐’는 식의 비아냥 섞인 질타다.

2008년 한국에 온 김청미(42)씨는 한국에 도착한 그 날부터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에 오기 전에 돈을 벌었던 중국에서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경계의 눈초리부터 보낸다고 했다. “말투를 듣고 처음에는 조선족인 줄 알고 무시하다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적대감을 나타내요. ‘간첩 아니냐’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거나 아예 그 순간부터 말을 안 섞는 사람들도 있어요.”

중국에서 3년 동안 장사를 했던 이씨는 중국에서는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얼마나 힘들었냐’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했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은 한 형제니까 중국 사람들보다 더 따뜻하게 대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느낀 건 북한 사람에 대한 미움뿐이에요.”

김씨는 중국 공안이 북한이탈주민을 북한에 넘기지만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중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보다는 중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말도 전했다.

북한에서 의사로 지냈던 이철민(가명, 64)씨는 한국에서 자신은 2등 시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한국에서 탈북자들은 소수자이면서 주류에 낄 수 없는 비주류 인생을 산다”며 “무슨 일을 하든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판단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과연 한 형제였던 적이 있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병원장까지 지냈던 이씨는 한국에서 자신의 기술을 쓸 수 없었다. 의사 면허를 다시 따기에 늦은 나이인지라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주위에서는


 “한국에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데 놀고먹으려고 하느냐”면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한다”고 가시 돋친 말을 했다. 


그는 “각자 능력이 다른데 북한에서 온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꺼리는 3D 업종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 봉천동에서 북한이탈주민 쉼터를 운영하는 박선례(성가소비녀회) 수녀는 남북이 화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부터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수녀는 “북한 사람들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체제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다가 온 이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며 “지금은 편견과 미움에서 벗어나 한 형제로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