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자오롱(趙榮)은 1746년 중국 귀주(貴州)에서 태어났으며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이고 원래 성은 주(朱) 씨였다. 그는 젊은 시절 좀 방탕한 생활을 했고 20세 때에 옥졸(獄卒)이 되었다.
그 당시는 천주교가 사천(四川) 지방에 막 전해졌을 때라 신자들이 조금씩 생길 때였는데, 1772년 갑자기 박해가 일어나 많은 신자들은 잡혀가 감옥에 갇혔다.
2년 뒤 매 신부라는 선교사가 새 영세자들을 격려하러 그 지역에 갔다가 체포되었다. 감옥에서 매 신부가 열정적으로 진리를 전파하는 모습에 많은 죄수들이 감동했는데, 옥졸로 있던 주영(朱榮) 역시 그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아 며칠 안 돼 교리를 배워 믿게 되었다. 나중에 매 신부가 감옥에서 나갈 때 그를 배웅하면서도 계속 교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매 신부는 1776년 그에게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견진성사도 베풀었다.
매 신부는 그가 신앙심이 굳건한 것을 보고 많은 일을 부탁했고 라틴어도 가르쳤다. 그리고 그에게 성인들의 책을 많이 읽도록 했다. 다른 신부 한 명도 그의 믿음을 보고 위독한 아이들에게 유아세례를 주게 하는 등 많은 일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성실한 그의 성격과 굳건한 믿음을 보고 주교에게 사제서품을 청했다. 그래서 1781년 음력 5월 10일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제품을 받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고 성도 조(趙, Zhao) 씨로 바꿨다.
사제가 된 뒤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자오롱은 착실하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하며 간절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박해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1815년 1월 27일 향년 69세의 나이로 하느님께 목숨을 바쳤다.
그는 1900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0년 10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19명의 동료 중국 순교자들과 함께 성인품에 올랐다.
강론 : (마태 10,7-15)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0,12-15)."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집'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집입니다.
'마땅하지 않은 집'은 복음을 거부하는 집입니다.
여기서 '평화'는 구원과 생명을 포함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어떤 집이 복음을 거부해도 그것은 너희의 책임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선교활동을 하다 보면,
복음을 거부하거나 복음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기는 결과는, 즉 구원과 생명과 평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들의 책임이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책임은 아닙니다.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는 것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뜻합니다.
구원을 받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자기 스스로 구원과 생명을 거부한 사람들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흩어지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라는 말씀은,
최후의 심판이 그만큼 무서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는 사람들의 운명은 다 똑같습니다.
견디기 쉬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먼지처럼 흩어지고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이 말씀은,
좀 더 강하게 경고하기 위해서 일종의 과장법을 사용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장을 바꿔서
"나는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믿고 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영원한 하느님 나라보다는 세속의 허무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사랑'보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더 큰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평화를 누리기에는 마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언급하신 예수님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연상됩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분가를 제안했을 때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들판을 선택하고 옮겨 갔습니다(창세 13,11).
창세기 저자는 그 일을 전하면서,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창세 13,13)."
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롯이 소돔 사람들의 상태는 보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만 보고
그곳으로 옮겨 갔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에 적당한 곳을 선택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을 선택한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전 재산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됩니다(창세 19장).
창세기 저자는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난 것은
그 자신의 성덕 덕분이 아니라, 아브라함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들판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창세 19,29)."
아브라함의 조카가 아니었다면 소돔이 멸망당할 때 롯도 함께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롯처럼 물질적인 복만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표시가 안 나도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속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런 속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도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일이 많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신 것을 잘 묵상해야 합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금과 은과 돈을 나누어 주라고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복음과 치유의 은총뿐입니다(마태 10,7-8).
태어날 때부터 장애자였던 어떤 사람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를 보고
자선을 청한 일이 있습니다(사도 3,3).
그때 베드로 사도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그러면서 그의 몸을 고쳐 주었습니다(사도 3,7).
(그 사람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좀 더 긴 대화를 사도들과 나누면서
그들이 예수님의 사도들이라는 것을 알고
돈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귀한 것을 달라고 간청의 내용을 바꾸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에 그 사람이 다른 것은 필요 없고
그냥 '돈이나'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좋은 것을 주는데도 안 받겠다고 거부하면 못 받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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