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7월 6일 나해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성녀 마리아 고레티)

dariaofs 2015. 7. 6. 00:30

 

 

성녀 마리아 고레티(Maria Goretti)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코리날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는데 6남매 중의 맏이였다. 1896년 그녀의 집안은 갈리아노 교외의 콜레 지안투르코로, 그 다음에는 페리에레 디 콘카로 이사하였다.

 

이곳에 정착한 직후에 부친은 말라리아에 걸려 운명하니, 남은 식구들은 생계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리아는 상냥하고 침착하였고 또 예의바른 아이였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기도, 순명 및 죄악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12살이 되지 않은 나이였으나 꽤 성숙한 편이었다.

1902년 5월 29일 그녀는 첫 영성체를 하였으며 그해 7월 어느 날 오후, 그날도 그녀는 집안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알렉산데르란 청년이 자기 셔츠를 기워달라는 부탁을 하여, 그것을 손질하면서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이때 18세 된 알렉산데르가 올라와서 계획대로 문을 잠그고,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끌고 침실로 가려고 하였다. 그녀는 소리치며 완강히 버티었다. 그녀가 끝까지 항거하자 그는 이성을 잃고 마리아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그녀의 몸에는 14군데의 깊은 상처가 생겼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약 24시간 후에 운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제가 성체를 영해주면서 알렉산데르를 용서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저 역시 그를 용서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천국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처럼 그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정결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마태 9,18-26)


<믿음과 구원>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마태 9,20-22)


"구원을 받겠지." 라는 여자의 말에서 '구원'은 병의 치유를 뜻합니다.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구원을 받았다." 라는 복음서 저자의 말에서 '구원'은

병의 치유와 영혼의 구원을 모두 뜻합니다.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즉시 병이 나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마르 5,29; 루카 8,44).

지금 마태오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신 다음에

병이 나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세 복음서가 전하는 것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의 불치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원한 것은 병을 고치는 일이었고,

그래서 만일에 여자가 병을 고친 다음에 바로 떠나서

예수님과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면,

여자는 몸이 건강해진 것에만 만족하면서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랬다면 여자는 영혼의 구원에서는 멀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영혼의 구원도 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구원'은 주시는 예수님과 받는 사람 사이의 '일치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사람 쪽에서 받으려고 하지 않는데도

예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도 아니고,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 달라고 요구해서

마치 빼앗듯이 얻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여자의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여자는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는(마르 6,56)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처음에는 '예수님의 옷만' 믿었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옷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여자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더 긴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자체가

바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에페 2,8).


그런데 여자는 사람들 모르게 예수님의 옷을 만졌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사람들 앞에 세우시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여자의 치유와 구원을 공적으로 선언하시고

확인해 주신 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믿음이란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여자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또는 지금 복음서를 읽고 있는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믿음과 구원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자의 믿음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이고,

동시에 병의 치유와 영혼의 구원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믿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따라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나를 믿어라."로 해석됩니다.

이 말씀에는 "이제부터는 몸의 병을 고쳤다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나를 믿고,

마지막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여라."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여자를 '구원'하신 일은 구원의 시작이고,

하느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가는 일은 이제부터 여자 자신이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선언하셨다고 해서

여자 쪽에서 더 이상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에서 '믿음'에 관한 예수님 말씀이 연상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이 말씀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주님을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죄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보다, 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믿고 노력하면 누구나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일은 예수님 쪽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죄인 쪽에서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한 '죄인'이라는 말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무도 자기 스스로 "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확정된 의인이다."

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만심에 빠지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로 "나는 구제불능이다." 라고 스스로 포기해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부러진 갈대'와 '연기 나는 심지'도 다시 살리시는 분입니다(마태 12,20).

내가 나를 포기해도 예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는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도,

최종적으로 그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나는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