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특 집

[손희송 신부의 ‘우리시대 교황님들’] (2-下) 격동기의 교황- 비오 12세 교황

dariaofs 2015. 6. 26. 19:00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최초 인정한 비오 12세

확고한 신념으로 격동기 교회를 이끌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는 항상 ‘파격’이란 수식어가 뒤따릅니다. 그런데 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역대 교황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교황주일을 맞아 역대 교황들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한 손희송 신부의 강의록을 요약하여 전합니다.
본 내용은 지난 6월 19일 교구 성소국이 주최한 본당 성소후원회 임원연수의 일부입니다.
좋은 내용을 전해주신 손 신부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가경자 비오 12세 교황. 출처 연합뉴스

 
 

대한민국을 최초로 주권국가로 인정한 비오 12세

유엔의 대한민국 합법 정부 승인에도 도움

 
비오 12세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교황은 1947년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패트릭 번 주교를 교황 특사로 대한민국에 파견하였는데, 이는 국제 관례상 교황청이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또한 교황은 대한민국이 1948년 제2차 유엔 총회에서 합법정부로 승인 받은 데에 막후에서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유엔 총회에 참석한 대한민국 대표단을 지원할 것을 자신의 측근인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대주교(후에 교황 바오로 6세)와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대주교(후에 교황 요한 23세)에게 명령하는 등 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에 크게 힘입어서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을 받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지 넉 달도 채 안되어서 유엔의 승인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격동기 교회를 이끈 확고한 신념

“로마교회, 더 높은 명망에 도달한 적 없다”

 

비오 12세 교황은 확고한 신념으로 격동기의 교회를 이끌어나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도덕적 권위를 지닌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분은 1958년 10월 9일에 교황 여름별장이 있는 카스텔 간돌포에서 선종하였는데, 장례미사를 위해 그의 시신 행렬이 로마에 입성하자 수많은 로마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고자 거리로 일제히 몰려나왔습니다.

독일의 한 역사학자는 교황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비오 12세하에서 그 전의 교황 하에서보다 더 외적인 손실을 입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서 더 높은 명망에 도달한 적은 거의 없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2009년 12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복자의 전 단계인 가경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 가경자 비오 12세

엄격한 통치 이끈 위대한 인물이나 새시대 열진 못해

 

교황 비오 12세는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지는 못했습니다.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옛 것의 큰 틀을 유지한 채로 약간의 변화를 불러오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수많은 알현을 통해 대중들과 접촉하였지만, 그는 모든 면에서 엄격하고 귀족적이며, 전체 군주와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교회를 철저히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그의 후임자인 요한 23세가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요한 23세가 베네치아 교구장이었을 때부터 임종 때까지 10년간 개인 비서로 일했던 로리스 카포빌라 추기경은 두 교황을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비오 12세가 위대한 교황이었다면 요한 23세는 좋은 교황이었다. 비오 12세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면, 요한 23세는 위대한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정신은 사람을 납득시키지만 마음은 사람을 정복한다!”
 

<3편 ‘요한 23세 교황’에서 계속>

글| 손희송 신부(교구 사목국장)
정리| 서동경 안나(홍보국 언론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