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왜 단호한 입장 표명하지 않았나?” 비난받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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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는 항상 ‘파격’이란 수식어가 뒤따릅니다. 그런데 교구 사목국장 손희송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서 역대 교황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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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 12세 교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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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규율 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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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추기경단 국제화 |
교황 비오 12세는 그의 후임 요한 23세와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되지만, 그 당시에는
‘거목’과 같은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종교심이 깊고 경건하며 현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로서 모든 가능성과
결과를 충분히 고려하고 숙고하기 전에는 쉽사리 모험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전통과 규율을 매우 중시하여 가톨릭 신학이 현대의 지적
사조에 영합하는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새로운 신학을 시도했던 프랑스의 명망 있는 신학자들의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이탈리아인 중심의 추기경단을 모든 민족과 인종을 위해 개방하였습니다. 추기경단의 국제화는 비오 12세의 손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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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한 가운데에 선 교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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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단호한 입장 표명하지 않았나?” 매스컴 뭇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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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문서 해제 된 후 그의 노력 속속 드러나… |
비오 12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지 6개월 만인 1939년 9월 1일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황은 전쟁의 발발을 최후의 순간까지 저지하려고 노력하였고, 이탈리아의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가
1940년 6월 10일 참전하기 전까지 이탈리아의 개입을 막으려 시도하였습니다. 전쟁 중에는 ‘교황청 구제위원회’를 통해 희생자들, 특히 전쟁
포로를 구제하기 위한 방대한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 비오 12세는 나치의 잔혹 행위,
특히 유대인 박해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교황청의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이런 비난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 선출 전 국무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1937년에 발표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타오르는 근심으로」(Mit brennender Sorge)의 작성에 깊이 관여하였는데, 그 회칙은 나치즘을 근본적으로 반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또한 1938년에는 국무원장으로서 전 세계 주교들에게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들에게 비자가 발급되도록 힘써
달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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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박해에 단호한 입장, 공개적 저항에는 신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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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구명위해 실질적 노력 앞장서 |
이렇게 비오 12세는 나치에 대해 명백히 반대하였지만, 이에 대한 공개적이고 강력한 저항에는
신중하였습니다. 공개적인 저항이 나치의 잔인한 보복을 불러일으켜 그들 치하에 있는 유대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위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대신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를테면 1943년 9월 10일 히틀러가 로마를 점령했을 때, 로마의
수도원들과 봉쇄 구역을 개방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로마의 봉쇄구역 개방은 교황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수상이 된 골다 메이어(1898-1978)는 1958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치 테러가 횡행하던 그
10년 동안 우리 민족은 끔찍한 수난을 겪었는데, 그때 교황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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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박해상황에서 택할 수밖에 없던 반공노선 |
비오 12세는 2차 대전이 종식된 후에는 평화와 화해를 외치며 유럽의 재건에 힘썼으며,
특히 승전국들이 패전국들에게 아량을 베풀어줄 것과 유럽의 일치를 호소하였습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동서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동구권, 특히 폴란드와 헝가리 등의 가톨릭 신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으로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 주교와 성직자들의 투옥과 국외추방 등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교황은 이런 만행에 대한 책임자들을 파문하였고, 철저한 반공주의 노선을 걸어가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2편-下에 계속>
글| 손희송 신부(교구 사목국장)
정리| 서동경 안나(홍보국 언론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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