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14일 나해 연중 제19주간 금요일(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5. 8. 14. 18:03

 

1894년 1월 7일 폴란드 우지 근처의 즈둔스카볼라(Zdunska Wola)에서 태어난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Maximilianus-Maria Kolbe, 또는 막시밀리아노)는 라이문두스(Raimund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910년 9월 4일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 막시밀리아누스라는 수도명을 택하였다. 이곳에서는 그는 중등 교육과 수련을 받고 1911년 9월 5일에 첫 서원약을 하였으며, 1912년 12월에 로마(Roma)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프란치스코회 국제 신학원에 머물면서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보나벤투라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 23세였던 성 막시밀리아누스는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신학원장 신부의 허락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litia Immaculatae)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다(1917년 10월 16일). 이 모임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철저히 봉헌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활동하는 일종의 신심 단체이다.

1914년 11월 1일에 종신 서약을 한 그는 1918년 4월 28일 사제품을 받고 1919년에는 폴란드로 돌아왔다. 귀국 직후 크라쿠프(Krakow)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동료 수사들은 물론 대학생들과 군종신부들 안에서 기사회 조직을 만들었다. 1922년부터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Rycerz Niepokalanje)라는 잡지를 발행함으로써 매스 미디어를 통한 사도직을 시작하였다.

 

이 잡지는 초기에 그로드노(Grodno)에서 발행되다가, 1927년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Miepokalanow)이라는 수도생활 공동체에서 발행하였다. 이 마을은 성 콜베 신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서 40km 떨어진 방대한 지역에 설립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1930년에는 일본 나가사키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중국, 한국, 인도에도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외부적인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폴란드 내에서 유명해진 성 콜베 신부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나치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가 곧 풀려났다. 이후 그는 가난한 이들과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에 거주토록 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1년 그가 "자유"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자, 나치는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2월 17일 그를 체포하여 바르샤바의 파비악 형무소에 감금했다가 2월 28일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그는 저명한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한 매질과 고문과 처벌을 맏으면서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말경, 한 수감자가 수용소를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나치는 한 명이 탈출하면 그 별로 열 명을 처형하였다.

 

나치에 의해 지목된 열 명의 처형자 중 한 폴란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고 울부짖자 이를 본 성 콜베 신부는 자원하여 대신 죽겠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결국 성 콜베 신부는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혀 아사형을 받았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2주 이상을 물과 음식 없이 생존한 그에게 나치는 결국 독극물을 주사하였고, 그는 1941년 8월 14일 아우슈비츠의 감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성 콜베 신부가 죽음을 맞이한 감방은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1948년 그에 대한 시복 절차가 시작되어 마침내 1971년 10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자비의 순교자'(Martyr of Charity)라는 칭호와 함께 그를 시성하였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가장 깊었고, 또 성모 마리아에게 매우 특별한 공경을 바친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강론   :    (마태 19,3-12)


<혼인>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4-6)."


바리사이들은 "버려도 됩니까?" 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버리면 안 된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는, 배우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보통

"결혼은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에 이혼하면 안 된다." 라고 말하는데,

만일에 '버림을 당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불공평한 말이 될 것입니다.

완벽하게 동등한 상황에서 합의 이혼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한 쪽은 버리고, 다른 쪽은 버림을 당하는 상황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버림을 당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피해자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혼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혼한 사람들을 아주 버리는 종교는 아닙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종교로서

단 한 사람도 버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간에.)

그래서 이미 이혼을 했더라도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있고, 도와주고 있습니다.

좋은 예가 '바오로 특전'입니다.


"혼인한 이들에게 분부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분부하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일 헤어졌으면 혼자 지내든가 남편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말합니다.

어떤 형제에게 신자 아닌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가 계속 남편과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또 어떤 부인에게 신자 아닌 남편이 있는데

그가 계속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 남편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신자 아닌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고,

신자 아닌 아내는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도 더러울 터이지만, 사실은 그들도 거룩합니다.

그러나 신자 아닌 쪽에서 헤어지겠다면 헤어지십시오.

그러한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습니다(1코린 7,10-15)."


신자 아닌 쪽에서 헤어지자고 요구한다면 헤어져도 된다는 것이

'바오로 특전'입니다.


종교박해 때에 배우자의 신앙을 반대하면서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신자가 아닌 쪽에서는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데도

신자인 배우자와 함께 박해 받고 고통을 겪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종교박해로 붙잡혀서 감옥에 갇히고 순교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이미 가정이 파괴된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혼하면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우선적으로 신앙을 선택하라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권고입니다.

('바오로 특전'은 종교박해가 없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 가운데에 "만일 헤어졌으면 혼자 지내든가" 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이 말은, 원칙적으로 이혼하면 안 되지만

어쩌다가 이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면 재혼하지 말고 혼자 지내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별거'는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또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부부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에는

차라리 별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 우리 교회가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입니다.

결혼할 때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혼인성사'는 하느님 앞에서 하는 신앙 행위라는 점입니다.

혼인 서약은 하느님 앞에서 배우자에게 하는 서약이기도 하고,

하느님께 하는 서약이기도 합니다.

그 서약을 깨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이것은 혼인성사뿐만 아니라,

세례성사, 신품성사, 수도자들의 종신서원 등에도 모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혼인 서약은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는 서약인데,

다른 서약은 죽은 다음에도 유지되는 서약입니다.)

지킬 마음이 없거나 지킬 자신이 없다면 서약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서약했다면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또 하느님께 서약한다는 점에서

서약을 깨뜨리는 일은 신성 모독죄가 되기도 합니다.

(십계명 제8계명뿐만 아니라 제2계명에도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혼인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마태 19,10)." 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그들은 혼인을 '자유와 권리를 잃어버리는 속박' 정도로 생각하고

부담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해이지만, 그래도 혼인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일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포기'는 더 큰 행복을 얻기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일이고,

그래서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