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15일 나해 성모 승천 대축일

dariaofs 2015. 8. 15. 01:15

 

                                                                                   (루카 1.39-56)

 

   <우리도>


예수님의 승천은 원래 계시던 곳으로 되돌아가신 일이고,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가득 주셨던 은총이(루카 1,28) 완성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희망하는 그곳에 먼저 가신 일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로서 자녀들을 인도하시려고.


예수님은 사람이신 분이면서 하느님이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도 성모님이시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긴 한데,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신 분의 승천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으로서 승천한 일은 성모 승천이 첫 번째가 아닙니다.

'에녹'이 첫 번째로 승천한 사람입니다(창세 5,24).

'엘리야'도 승천했습니다(2열왕 2,11).

유대인들은 '모세'도 승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천했다는 점은 같지만,

성모님은 메시아의 어머니이신 분이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위대하신 분입니다.)


'승천'이란 죽은 다음에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일과 다릅니다.

엘리야처럼 살아 있는 채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승천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모님께서 승천하셨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승천으로 마무리되는 인생을 사셨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도 바로 '성모님의 삶'입니다.


그런데 성모님 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데도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일방적으로 함께 계셔 주신 것은 아닙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선택과 은총에 응답하셨고, 순종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 주신 것과 똑같이

성모님 쪽에서도 하느님과 함께 사셨다는 것입니다.

'에녹'도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승천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창세 17,1)."

하느님 앞에서 사는 것,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

흠 없는 이로 사는 것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흠 없이 살았다고 기록된 첫 번째 사람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창세 6,9)."


노아와 아브라함은 그렇게 흠 없이 하느님과 함께 살았고,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인데도

승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승천이 얼마나 특별한 은총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흠 없이 사는 것일까?

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일까?


세례자 요한의 부모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도 흠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루카 1,6).

그런데 즈카르야는 천사가 전하는 말을 믿지 않음으로써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루카 1,20).

그동안 흠 없이 살았는데, 그 일이 그의 '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최단 시간에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죄수입니다(루카 23,43).

(아마도 그는 예수님 덕분에 하늘나라에 들어간 첫 번째 사람일 것입니다.)

그가 한 일은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한 일과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청한 일뿐입니다(루카 23,41-42).

그가 무슨 죄로 사형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흠 없이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그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신 것은

그의 흠을 없애서 흠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깨끗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루카 5,13).

그 사람 자신도 예수님을 믿었고, 하늘나라를 희망했고,

동시에 자기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등의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난 제자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첫 번째로 증언한 증인입니다.

우리는 막달레나 성녀가 일곱 마귀가 들렸었다는 것 외에는

성녀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어떻든 과거의 삶에 어떤 흠이 있었더라도

예수님에 의해서 흠 없는(깨끗한) 사람이 되었고(루카 8,2),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만나는 은총과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제2의 동정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성녀 자신도 엄청나게 노력했을 것입니다.


흠 없이 산다는 것은,

태어날 때 완벽하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에 그런 것이라면, 인간으로서는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모님의 '흠 없는 삶'과 '은총 가득한 삶'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면,

또는 성모님의 어떤 초인적인 성덕 때문이라면,

우리는 성모님을 본받자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모님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신 분이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가신 분입니다.

어머니께서 하신 일이라면 자녀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안 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모님의 승천을 경축하는 것은

우리도 어머니께서 계신 그곳에 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희망한다면, 막연하게 바라지만 말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