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18일 나해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성녀 헬레나)

dariaofs 2015. 8. 18. 05:06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Roma)의 장군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태어났다. 293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 휘하에서 카이사르(Caesar)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다.

306년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의 휘하 군인들이 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312년 10월 12일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후 그는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에게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Milano) 칙령을 반포하게 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일을 도우면서 수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 후 아들이 동서 로마제국 모두를 장악한 뒤에 만년에 접어든 헬레나는 325년경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성지에 오래 머물면서 갈바리아(Calvaria) 언덕에 성당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에서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 그녀는 330년 8월 18일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Izmit)인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사망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안장되었다.

 

강론   :   마태오 19.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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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오늘도 역시 베드로 사도가 나섭니다.

어제 부자청년은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해 주님 따르는 것에 실패했지만

자기와 다른 제자들은 모든 것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자기들은 무엇을 받겠는지, 주님께서는 무엇을 주시겠는지 여쭙니다.

 

이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보면서 속 보인다고 비난하거나

저속하다고 비웃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조금이라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얻기 위해 따라야 하지

잃기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뭔가를 얻기 위해 따르지 않고 사랑하기에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얻는 것이 없이 잃기만 한다면 누가 따르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우리 천주교는 반성할 것이 많습니다.

 

개신교와 비교할 때 천주교 신자들은 주일미사에 잘 가지 않고,

주일미사에 가더라도 기꺼이 나가지 않습니다.

성당에 가서 얻는 것은 없고 잃고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얻는 것 없이 시간과 돈만 뺏기고 돌아온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마음과 영혼에 양식이 되는 좋은 말씀을 듣고 온다면,

전례를 통해서 영혼이 치유되는 그런 체험을 하고 돌아온다면,

하다못해 성가라도 신나게 부르고 온다면

큰 것을 얻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상실감은 없을 것이고,

그래서 기꺼이 주일미사에 참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뭔가를 얻기를 바라는 것은 비난받을 만큼

나쁜 것도 아니고 저속한 것도 아닙니다.

저속한 것을 바라는 것이 저속한 것이지

얻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저속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면 무엇을 받게 되는지

베드로 사도가 물었을 때 어찌 바라는 게 있냐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당신이 영광스런 옥좌에 앉게 되면

제자들도 열두 지파를 심판할 열두 옥좌에 앉을 것이며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주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이냐,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세에 받게 될 상급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현세와 내세의 상급을 모두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제자들은 이것을 현세적 보상으로만 받아들인 겁니다.

 

이것이 저속한 것입니다.

더 고상한 것이 있는데,

더 맛있는 것이 있는데

더 영원한 것이 있는데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얻기를 바라지 않고 그 반대의 것을 바라다니!

 

그런가 하면 일부 개신교에서 3박자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지요.

그중에서도 장수, 자녀, 재물의 축복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이런 축복을 안 주시는 하느님이라고 얘기하지도 않고,

이런 축복 받기를 원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도 않지만

이런 축복만 받기를 원하지 말고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그것을 받기 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내게는 무엇인지,

내가 받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묵상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