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 세체의 성 카롤로 수도자, 1회
1월 11일 : 코리의 성 토마스 사제, 1회
1월 14일 : 복자 포르데노네의 오도리코 사제, 1회
1월 16일 : 성 베라르도 사제와 동료들, 순교자, 1회
1219년 성 프란치스코의 아들인 성 베르라도와 동료 형제들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에스파냐로 떠났다. 그곳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붙잡혀 모로코로 추방되었다. 마라케쉬에서 그들은 다시 감옥에 갇혔고 여러 가지 고문을 받았고 1220년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들은 우리 수도가족의 「거룩한 첫 순교자들」으로 불린다. 이들의 순교는 성 안토니오가 작은형제회로 옮겨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1월 19일 : 성녀 에우스토키아 칼라파토, 2회
1월 30일 : 마레스코티의 성녀 히야친타 동정녀, 3회
복자 이야친타는 1585년 비테르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제3회에 들어갔다. 심한 질병을 앓은 다음 엄격한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이웃 사랑에도 열심이었다. 1640년 비테르보에서 선종했다.
2월 6일 : 성 베드로 밥티스타,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일본 순교자, 1·3회 기념일
베드로 밥티스타는 1542년 에스파냐에서 태어났다. 필리핀에서 선교를 한 다음 1593년 5명의 동료 형제들과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 나라의 정치 종교 혼란 상태 때문에 그들의 전교와 자선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는 동료 형제들과 세 명의 예수회원 그리고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들과 함께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 1597년 2월 5일 그들의 순교가 이루어졌다.
2월 7일 : 산 쥬세페의 성 에지디오 마리아 수도자 1회
2월 7일 : 트리오라의 성 요한 사제 순교자 1회
2월 7일 : 트리오라의 성 요한 사제 순교자 1회
2월 7일 : 코르비의 성녀 콜레타 동정녀, 2회 기념일
성녀 콜레타는 1381년 프랑스 코르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삼회 수도복을 입고 한동안 은수자로 살았다. 그 뒤 클라라 수도회에 입회하여 교황님의 전권을 받아 프란치스코 운동 본래의 생활양식을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일회와 이회의 많은 수도원을 개혁했다. 1447년 3월 6일 선종했다.
2월 25일 : 발현의 복자 세바스티아노 수도자, 1회
3월 2일 : 보헤미아의 성녀 아녜스 동정녀, 2회
성녀 아녜스는 1205년경 보헤미아의 임금 프레미슬라우스의 딸로 태어났다. 황제와 혼인을 거절하고 1236년 왕궁 가까운 곳에 클라라 수도원을 지은 다음, 그곳에 입회하였다. 오래 동안 수도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는 성녀 클라라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고 여러 번 편지 교환을 하였다. 1280년에서 1283년 사이에 선종하였다.
3월 3일 : 복자 리베라토 바이스와 동료 에티오피아 곤다르 순교자, 1회
3월 5일 : 십자가의 성 요한 요셉 사제, 1회
3월 18일 : 오르타의 성 살바토레 수도자, 1회
3월 22일 : 오시모의 성 벤베누토 스코티볼리 주교, 1회
4월 04일 : 상토 필라델포의 성 베네딕토 니그리 수도자, 1회
4월 21일 : 파르잠의 성 콘라도 수도자, 1회
요한 에반겔리스트 비른도르퍼는 1818년 독일 파사우 지방의 파르잠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푸친 형제가 되어 43년간 알퇴팅 수도원의 문지기로 봉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쉼 없이 드리는 열심한 기도와, 나그네와 순례객, 가난한 이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봉사와 희생어린 사랑으로 꾸며진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1894년 4월 21일 선종했다.
4월 23일 : 아시시의 복자 에지디오, 수도자, 1회
복자 에지디오는 성 프란치스코의 첫 동료 가운데 하나다. 그는 단순하고 착한 생활로 이름이 높다. 그는 신심에 불타 여러 신앙의 순례지를 찾아다녔다. 이 여정에서 들판의 농부들에게 품을 팔아 일용할 양식을 얻었다. 그는 생애 남은 절반을 페루지아에서 엄격한 극기와 관상에 전념하며 보냈다.
4월 24일 : 직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순교자, 사제, 1회
성 피델리스는 1578년 직마린겐 읍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브라이스가우 지방의 프라이부르그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했으며, 1612년 사제가 되고 카푸친회에 들어갔다. 뷔텐부르그와 포알베르그, 스위스에서 설교가로 활동했다. 개신교에 대항한 사목 활동 중에 1622년 4월 24일 세비스에서 칼빈파 농부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유해 가운데 몸은 쿠르의 주교좌 성당에, 머리 부분은 펠드킬히의 카푸친 형제들의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법률가들의 수호자다.
4월 28일 : 복자 루케시오, 3회
복자 루케시오는 1181년 토스카나에서 태어났다. 무역과 금융업계에서 종사하다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제3회에 들어갔다. 1260년경 80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5월 04일 : 복자 토마스, 엔리코, 아르투로, 요한, 카롤로 영국 순교자, 1회
5월 09일 : 볼로냐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 2회
성녀 가타리나는 1413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1431년 페라라의 성 클라라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수련장이 되어 이 직책을 훌륭히 수행했다. 볼로냐에 새 수도원을 세우고 1463년 선종하기까지 거기서 수도원장으로 봉사했다.
5월 12일 : 카스트로노의 성 레오폴도 만디츠 사제, 1회
성 레오폴도는 1866년 5월 12일 헤르체고비나의 카스트로노보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형제회에 입회하여 영웅적인 희생 정신으로 일생을 거의 고백소에서 보냈으며, 용서와 위로와 빛을 주는 훈계를 주었다. 하느님께 동방 형제들의 회귀와 교회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1942년 7월 30일 파도바에서 선종하였다.
5월 13일 : 성 베드로 레갈라도 사제, 1회
5월 16일 :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 3회
1247년 토스카나 지방에서 출생했다. 9년 동안 동거하던 남자가 죽은 다음 코르토나로 가서 프란치스코 3회에 입회하였고 작은 형제들의 인도를 받아 새 삶을 시작했다. 성녀는 환자들에게 큰 자비심을 보였으며 병원을 지어 동료들과 함께 환자들을 사랑으로 간호했다. 또한 깊은 겸손과 가난 가운데 기도와 단식, 묵상에 열심이었다. 특별한 사랑으로 성체 성사의 신비와 예수님의 수난을 공경했다. 1297년 2월22일 선종했다.
5월 17일 : 성 파스칼 바일론 수도자, 1회
성 파스칼은 1540년 에스파냐에서 태어났고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저술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 체험, 그 중에서도 깊은 성체 신심은 다른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5월 18일 :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수도자, 1회
1515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 칸탈리체에서 태어나 1543년 카푸친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40년간 로마에서 애긍 형제로 일하여 세상에 ‘데오그라시아(Deo Gratias)', 곧 '하느님께 감사' 형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는 복음에 뿌리를 둔 단순성과 기쁨의 사람으로서 많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이 가운데는 성 가롤로 보르메오와 성 필립 네리가 있었다. 1587년 5월 18일 선종했다.
5월 19일 : 코르테의 성 테오필로 사제, 1회
5월 20일 :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 1회
성 베르나르디노는 1380년 토스카나에서 태어나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여 사제품을 받은 다음 설교가로서 놀라운 활동을 하였다. 이 때 특별히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에 대한 신심을 전파하였다. 그는 수도회 안에 학문 연구를 촉진하고 회칙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개혁 운동에 힘썼으며 많은 신학 저술을 남겼다. 1444년 아퀼라에서 선종하였다.
5월 30일 : 성녀 밥티스타 바라노 동정녀, 2회
복자 밥티스타는 1458년 움브리아 지방 카메리노에서 그곳의 영주인 공작의 딸로 태어났다. 1481년 성 클라라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고향에 수도원을 새로 설립하고 수도원장으로 봉사했다. 1524년 선종했고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6월 12일 : 복자 이올렌타 수도자, 2회
6월 13일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교회 학자, 1회
성 안토니오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품을 받았으나 작은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 보여준 신앙 고백에 감화를 받아 북아프리카에 믿음을 전파하러 가기 위해 스스로 작은형제가 되었다. 아프리카에는 가지 못했지만 남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설교가로 활약하여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많은 이단자를 참 신앙에 돌아오게 하였다.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그를 형제회의 첫 신학 교수로 인정하였다. 1231년 6월 13일 파도바에서 선종하였다. 교회 학자로서 "복음의 학자"(Doctor evangelicus)라고 불린다. 여러 가지 곤경에 빠진 이들의 수호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성은 그를 각별한 애정으로 공경한다.
6월 16일 : 파르마의 복자 요한 사제, 1회
6월 20일 : 복자 파트리치오, 콘노, 코노로, 요한, 아일란드 순교자, 1회
6월 30일 : 복자 라이문도 룰로 순교자, 3회
라이문도 룰로는 1233년 발레아레노의 팔마에서 태어났다. 3회원으로서 1315년 6월 29일 순교하였다
7월 08일 : 성 그레고리오 그라시 주교, 에르미니아 동정녀 동료 중국 순교자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으로 희생된 수많은 순교자 가운데 세 분의 주교 그레고리오 그라시, 안토니오 판토사티, 프란치스코 파골라와, 네 명의 사제, 일곱 명의 수도3회 수녀와 열 다섯 명의 제3회원이 있었다.
7월 09일 : 성 니콜라오 피크, 성 빌알도와 동료 네델란드 순교자, 1회
1572년 6월 네들란드 칼뱅파의 귀족 당원들은 고르쿰의 작은형제들과 재속 사제를 붙잡아 여러 마을로 끌고 다니며 백성들의 조롱거리로 삼았다. 그들이 끝내 성체와 교황의 수위권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수호하자 참혹하게 목매달아 죽였다.
7월 10일 : 성녀 베로니카 쥴리안니 동정녀, 2회
우술라(베로니카 성녀의 세례명)는 이탈리아의 메르카텔로에서 1660년 태어났다. 1677년 움브리아의 치타 디 카스텔로에 있는 카푸친 클라라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생애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았다. 1727년 선종했다.
7월 12일 : 성 요한 존스, 성 요한 월 사제 영국 순교자, 1회
두 순교자는 영국 출신의 작은 형제들이다. 그들은 교황의 수위권 옹호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성 요한 존스는 1598년 7월 12일, 요한 왈은 1679년 8월 22일 처형되었다.
7월 13일 : 복자 엠마누엘 루이즈와 동료 시리아 다마스쿠스 순교자, 1회
7월 14일 :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 사제, 1회
1549년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나 스무 살 되던 해에 작은형제가 되었다. 선교사로 남아메리카에서 있는 동안 인디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애썼다. 그의 이런 선교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선교 활동의 과로와 엄격한 보속 생활을 뒤로 하고 1610년 리마에서 선종했다.
7월 15일 : 성 보나벤투라 주교 교회학자, 1회
성 보나벤투라는 1221년 비테르보에 가까운 반뇨레지오에서 태어났다.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로 질병에서 치유되었다. 작은형제가 되어 파리에서 학위를 받은 다음 교수로 활동하다가 36세에 수도회 총봉사자로 선출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는 그를 알바노의 추기경 주교로 임명하고 제2차 리옹 공의회 개최를 준비할 책임을 맡겼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함께 당대의 신학을 주도하던 그는 제2차 리옹 공의회 중인 1274년 7월 15일 선종했다.
7월 18일 : 리프니카의 성 시몬 사제, 1회
7월 19일 : 두클라의 성 요한 사제, 1회
7월 21일 :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교회학자, 1회
1559년 7월 22일 브린디시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형제회에 입회하여 이름난 신학자와 설교가로 활약했다. 1602년 1605년 사이에 총봉사자의 직책을 맡아 수도회에 봉사했다. 오스트리아의 여러 지방에 수도회를 진출시켰으며 바이에른 지방에서 크게 활약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개혁에 힘썼고 가톨릭 영주들에게 외교적으로 활약하여 터키 군대를 막아냈다. 1619년 7월 22일 외교적 선교 여행 때 리스본에서 선종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교회 학자로 뽑으면서 "사도 학자"(Doctor apostolicus)"라는 이름을 주었다.
7월 23일 : 성녀 쿠네군디스 수도자, 2회
복자 이올렌타 (6월 12일이 기념일)의 언니인 복녀 쿠네군디스는 1224년 헝가리의 왕 벨라의 공주로 태어났다. 크라카우의 영주 볼레슬레이 5세와 결혼하였다. 남편이 죽은 다음 1279년 성 클라라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 지방의 가난한 이와 환자들의 사정에도 관심을 가져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1292년 선종하였다.
7월 24일 : 사보이아의 복자 루도비카 수도자, 2회
1462년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공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자 성 클라라수도원에 입회하여 살다가 1503년에 선종하였다.
7월 27일 : 복자 마리아 막달레나 마르티넨고 동정녀, 2회
복자 마리아 막달레나는 1687년 브레시아에서 태어나 1705년 카푸친 성 클라라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련장과 수도원장으로 봉사했다. 그녀가 남긴 문헌은 영성 생활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을 짐작하게 한다. 1737년 선종했다.
8월 05일 : 복자 페데리코 얀순 사제, 1회
8월 11일 :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동정, 2회
성녀 클라라는 1193~4년에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직 젊은 나이에 그리스도께만 속한 사람이 되기 원하여 같은 아시시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따라 복음적 이상을 살기 위하여 세속을 버렸다. 성 프란치스코 그의 자신이 그녀에게 거친 수도복을 입혔고 성 다미아노의 작은 성당곁에 클라라의 동생 아녜스가 들어왔고 아시시의 다른 여러 고귀한 젊은 여성들이 들어온 작은 거쳐를 마련했다.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들도 뒤따라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생전에 이미 많은 수도원이 국내외에 생겨나 성녀와 같은 생활양식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성 다미아노의 가난한 여인들” 후에 클라라회라고 불리우는 프란치스코 2회가 탄생되었다.클라라는 철저한 가난과 관상생활 안에서 평생을 성 다미아노에서 살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자매들을 돌보았고 쉬지 않고 일했으며 온 영혼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했다. 성체께 대한 깊은 신심으로 1240년과 1241년 아시시를 사라센으로부터 보호했다. 오랜 병상 생활 끝에 1253년 8월11일 산 다미아노에서 선종했고 무덤은 Santa Chiara에 있다. 1253년 세상을 떠났고 교황 알렉산드로 4세께서 시성하셨으며 그녀의 시신은 그녀를 위해 마련된 아시시의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8월 14일 : 성 막시밀리아노 복된 콜베 사제 순교자, 1회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꼴베는 1894년 1월 8일에 폴란드에서 출생했다. 청년시기에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1819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천주의 모친 동정 마리아께 자녀다운 효성에 불타는 마음에서 ‘성모기사회“라는 신심단체를 설립히였데, 이 단체는 그의 고향과 다른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성모님의 도우심 밑에서 신앙 전파에 노력하였다. 마침내 폴란드로 돌아가 크라코프 교구 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무수한 고통을 당하다가, 민족들의 전쟁이 더욱 가혹해지던 1941년 8월 14일에 자진하여 사랑의 제물로 생명을 내놓았다.
8월 17일 : 실바의 성녀 베아트리체 동정녀, 2회
베아트리체는 1424년 에스파냐 체우타에서 태어났다. 한 때 이사벨라 여왕의 궁녀였으나 측근의 시기 때문에 왕궁에서 쫓겨나 톨레도의 수도원에서 30년간 지냈다. 1484년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에게 봉헌한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1490년 선종하였고 1976년 10월 3일 시성되었다.
8월 19일 : 톨로사의 성 루도비코 주교, 1회
루도비코는 나폴리의 왕 단지오 까를로의 아들로 1274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형제들과 함께 스페인 아라곤의 왕에게 불모로 잡혀가 그곳에서 프란치스코회원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자유를 되찾은 다음 그는 왕위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도 끊어버렸다. 뚤르즈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먼저 프란치스코회의 규칙을 서원하며 작은 형제회의 옷을 입기를 원했다. 사목자로서 열성을 다했으며 겸손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열성적 사랑을 실천했다. 아직 젊은 나이인 1297년 세상을 떠났으며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성인품에 올려졌다.
8월 25일 : 성 루도비코 9세 임금, 3회
1214년 태어나 1226년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통치 초기에 그는 어머니인 성녀 블랑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프로방스의 마가렛다와 결혼하여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고 친히 그들을 잘 길렀다. 그는 신심이 깊었고 기도와 극기의 생활 가운데 정의롭고 기사도를 존중했다. 탁발 수도회-프란치스칸 수도가족의 좋은 후원자였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탁월했다. 왕국을 다스릴 때 국민들의 평화와 물질적 진보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진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스도의 무덤을 자유로이 참배할 수 있게 하려고 두 번이나 십자군 원정에 나서 1250년에는 포로로 잡혔으며, 두 번째 원정에서 1270년 8월 25일 Tunis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8월 26일 : 복자 유니페로 세라 사제, 1회
9월 11일 : 바르치노네의 복자 보나벤투라 수도자, 1회
9월 18일 : 코페르티노의 성 요셉 사제, 1회
성 요셉은 1603년 레체의 꼬베르띠노에서 태어났으며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 1628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불타는 열심으로 거룩한 직무를 수행했다. 매우 극심한 극기의 삶과 전적인 기도의 정신이 남다르게 뛰어났다. 그의 삶은 크리스챤 신비의 매우 흥미로운 모습의 하나로서 특별한 탈혼과 잦은 기적들로 점철되었다. 이 과도한 천상 은혜들로 인한 대중들의 열광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자주 수도원을 바꾸어야 했으나 그는 항상 겸손하게 조건없는 순종으로 받아들였다. 지극히 거룩한 동정마리아에 대한 커다란 신심을 가졌다. 1663년 9월18일 마르께의 오시모에서 세상을 떠났다. 교황 끌레멘떼 13세에 의해서 시성 되었다.
9월 23일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1회
9월 24일 : 산 세베리노의 성 파치피코 사제, 1회
10월 4일 :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 세 수도회 창설자
10월 6일 : 오상의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 동정 3회
10월 10일 : 성 다니엘과 동료 마로코 순교자, 1회
1227년 다니엘 형제를 선두로 한 일곱 명의 작은 형제들이 사라센인(모슬렘)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마로코로 떠났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려다가 심한 고문과 사형을 당했다.
10월 11일 : 복자 요한 23세 교황, 3회
10월 19일 :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 사제, 1회
성 베드로는 1499년 에스파냐의 알칸타라에서 태어났다. 신학공부를 끝내고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1554년 형제회 수도회칙을 더 엄격히 지킬 허락을 받고 자기와 생활을 나누려는 동료 형제들을 보속과 극기, 끊임없는 기도와 극단적인 가난의 삶으로 이끌었다. 열정적인 강론을 통해 형제회 안팍에서 큰 성과를 얻었으며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에 있어 아빌라의 데레사에게도 좋은 조언자였다. 그의 개인적 영성 체험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열렬한 신심에서 여러 권의 영적 저서를 남겼다. 1562년 10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10월20일 :복자 콘타르도 페리니, 3회
10월 22일 : 복자 요세피나 레룩스 동정 순교자, 2회
복녀 요세피나는 1747년 Cambrai에서 태어났다. 1770년 성클라라수도원에서 서원했다. 1791년 혁명군의 법에 의해 수도원에서 떠나기를 강요 당했다. Valenciennes의 우술라 수녀회에 머물 허락을 받은 것도 잠시 이내 그 수녀원에서도 축출되어 1794년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
10월 23일 :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1회
1386년 이탈리아의 Capestráno(Italia)에서 태어났다. Perugia와 Napoli에서 수학하고 유명한 판사가 되었다. 백성들의 소요 중에 포로가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오고 깊은 신앙적 위기를 겪고 나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와 절친한 사이로서 그와 함께 자기형제회의 쇄신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평화르 이루는 이로서, 이웃사랑의 사도로서 온 유럽을 두루 다니면서 설교했다. 이단자를 대적하고 또한 회교도에 대항할 십자군을 독려하는 중에 특히 1456년 Belgrads의 승리에는 그의 공로가 컸다. 바쁜 생활 중에서도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1456년 10월 23일 Ilok(Donau)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행방불명되었다.
10월 24일 : 산타안나 갈바웅의 성 안토니오 사제
11월 08일 : 복자 요한 둔스 스코트 사제, 1회
11월 13일 : 알칼라의 성 디에고 수도자, 1회
성 디에고는 1410년 스페인의 Alcalá에서 태어났다. 이미 젊은 나이에 기도와 노동이 조화된 은수자로 생활하다가 1441년 카나리아 섬에 선교사로 떠났다. 1450년 로마 체류 당시는 페스트 환자를 간호했고 스페인으로 돌아와 1463년 11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11월 14일 : 성 니콜라오 타벨리츠와 동료 사제 예루살렘 순교자, 1회
니꼴라오는 1340년경 달마씨아의 쎄베니꼬에서 태어났다. 보스니아의 첫 번째 선교사였으며 1381년 팔레스티나를 향하여 출발했다. 같은 형제인 꾸에오의 스테파노 나르본의 베드로 루띠치니오의 데오다또와 함께 크리스챤 믿음을 옹호하는 담회문을 작성했고 그것을 예루살렘의 까디 앞에서 발표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확언한 바를 취소하도록 유인 받았으나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으므로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1391년 11월 14일 순교했다. 1970년 6월 21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11월 17일 :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재속 프란치스코회 수호자, 3회
1207년 헝가리의 왕 안드레아의 딸로 태어났다. 아주 어린 나이에 튀린지아의 루드비히 4세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았다. 그의 신분에 따르는 의무들에 충실한 동시에 그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에게 나누어 도와주었고 손수 나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십자군 전쟁 도중 남편이 죽자 부당하게 그의 성에서 세 아이들과 함께 쫓겨났다. 그녀는 믿음과 강한 의지로 이 새로 직면한 가난한 상황을 받아들였고 계속하여 아이들의 교육과 병자들을 돌보아주고 기도하는데 전념했다. 프란치스코 3회원으로 1231년 24살의 나이에 마르브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11월 18일 : 크라코비아의 복자 살로메아 동정녀, 2회
복자 살로메아는 1211년 크라카우에서 태어나 헝가리의 영주 콜로만과 결혼했다. 결혼 후 동정으로 살다가 남편이 죽은 후 1245년 성클라라수도원에 입회하였고 1268년 세상을 떠났다.
11월 19일 : 아시시의 성녀 아녜스 동정녀, 2회
아시시의 성녀 아녜스(1197-1253)는 친지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언니인 성녀 클라라의 결심을 몇일뒤에 수도원에서 결단력 있게 따랐다. 그뒤 피렌체에 새 수도원을 창설하기 위하여 떠났었고 그곳에서 아시시로 돌아와 성 다미아노에서 언니인 클라라 동생 베아트릭스 어머니 오르똘라나가 함께 생활한 곳에서 마지막 해를 보냈다. 천사적인 가난의 복음적 이상을 완전하게 살았다. 언니인 성녀 클라라의 뒤를 따라 세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11월 20일 : 복자 파스칼 포르투오 알멜라 동료 에스파냐 발렌시아 순교자, 1회
11월 22일 : 복자 살바토레 릴리와 동료 아르메니아 순교자, 1회
11월 25일 : 비시니아노의 성 우밀리스 수도자, 1회
11월 26일 : 포르토 마우리지오의 성 레오나르도, 사제, 1회
레오나르도는 1676년 포르토 마우리지오(임페리아)에서 태어났다. 로마대학에서 공부를 마쳤고 20살에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 사제로 서품되어 이탈리아의 거의 전지역을 누비며 설교사도직의 열성을 다했다. 특별히 그는 신자들에 대한 설교의 역점을 사순절과 영적신심행위들에 두었다. 그는 십자가의 길 신심행위에 커다란 전파자였다. 여러 가지 설교와 영적 생활에 대해서 썼고 이 글들에서 프란치스코회의 영성을 특성짓는 윤곽들이 드러난다. 1751년 11월 26일 세상을 떠났고 비오 9세에 의해서 시성 되었다.
11월 27일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사제, 1회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는 1681년 8월 6일 남이탈리아 Lucéra에서 태어나 콘벤투알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사제품을 받고 철학 교수로 봉직하면서 열심한 설교가였다. 관구 봉사자로 재임하면서 외적으로 수도원 성당을 보수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엄격한 가난에 관심을 기울여 관구를 쇄신하였다. 엄격한 개혁가이면서도 사랑 깊은 봉사자였다. 1742년 11월 29일 고향에서 선종하였다.
11월 28일 : 마르카의 성 야고보, 사제, 1회
1934년 몽떼 프란도네 삐체노에서 태어났다. 무엇보다 법률공부에 열중했고 뻬루지아에서 공부했다.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전생애를 거의 이탈리아 전역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는데 헌신했고 효력있고 설득있는 설교가였으며 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했다. 시에나의 베르나르도성인의 제자이며 예수 이름에 대한 신심을 지속적인 열성으로 전파했다. 1476년 나폴리에서 세상을 떠났고 교황 베네딕또 13세에 의해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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