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0월 4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축일 - 강을 건넌 다음에는 배를 버려라!

dariaofs 2015. 10. 4. 05:27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인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Pietro Bernadone)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부친이 출타 중인 틈을 이용하여 어머니가 요한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프랑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개명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젊은 날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고 노는 일로 보내다가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1202년에 투옥되었다.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고, 병에서 회복한 뒤로는 딴사람이 되었다.

그는 스폴레토(Spoleto)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내 교회를 고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옛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는 버려진 옛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에서 들은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성당을 수리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부친과 결별하게 되었고,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고 ‘가난 부인’을 모시는 통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3년 후인 1210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가 극도의 가난을 살려는 그와 11명의 동료들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작은 형제회’, 곧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본부는 오늘날 아시시 교외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안에 있는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이었다. 이 작고 허름한 성당에서부터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면서 형제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다. 그들은 재산과 인간적인 지식 소유를 거부하였고 교계 진출 또한 사양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사제가 아니었고 다만 부제였다고 한다.

1212년에 그는 성녀 클라라(Clara)와 함께 ‘가난한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때 그는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갈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1219년에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레크 알 카멜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결국 사라센 선교가 실패로 끝난 줄 알고 성지를 방문한 뒤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1217년부터 이 수도회 안에는 새로운 기운이 치솟기 시작하여 조직이 강화되면서 발전의 폭이 커졌다. 관구가 형성되고 잉글랜드(England)를 비롯한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참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이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중에 몇몇 회원들이 수도회의 규칙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우고리노(Ugolino) 추기경의 도움으로 규칙을 확정짓고 승인을 받았다.

1224년 그가 라 베르나 산에서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오상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상은 그의 일생동안 계속되면서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는 오상으로 인한 고통 중에도 당나귀를 타고 움브리아 지방을 다니며 계속 복음을 전하다가 기력이 쇠하여지고 눈마저 실명되어 갔다. 그런 고통의 와중에서 이탈리아어로 ‘태양의 노래’를 지었다.

병세가 깊어지자 성 프란치스코는 포르치운쿨라로 숙소를 옮겼다. 미리 유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죽음의 다가온 것을 알자 그는 알몸으로 자신을 잿더미 위에 눕혀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사들에게 요한 복음서의 수난기를 읽게 한 후 시편 43장을 노래하며 1226년 10월 3일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유해는 다음날 아시시에 있는 산 조르조(San Giorgio)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2년 후인 1228년 7월 15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230년 5월 25일 그의 유해는 엘리아가 그를 기념하여 지은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지하 묘지로 이장되었다.

지금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공경은 세계 도처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가 세운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다른 재속회원과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의 성덕을 본받고 가난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아시시의 가난뱅이 프란치스코 만큼 교회 안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시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No Attached Image

 

몇 해 전부터 저는 제가 변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변하신 하느님과 달리 유한한 존재이니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와 프란치스코와의 관계가 변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하는 것이 다 나쁘지 않고 좋게 변하는 것은 좋은 건데

안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닐까?

남녀 간의 사랑에 권태기라는 것이 있다는데

나도 권태기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그것은 분명합니다.

10, 20, 30대처럼 프란치스코를 향한 열망이 강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를 알고자 하는 열망,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하는 열망,

프란치스코를 따르고자 하는 열망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주 프란치스코를 바라보고,

아주 강한 시선으로 프란치스코를 바라보던 저의 시선이

점차 약해지고 뜸해진 것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한 저를 반성키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당연한 것이라고 변호하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사실 젊었을 때의 저의 프란치스칸 열망에는 불순물이 많았습니다.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섞인 열망이었던 것입니다.

마른 장작보다는 생나무의 불길이 더 강하고,

애욕이 순수한 사랑보다 더 강한 것처럼 보이듯

욕심이 섞인 열망이 참으로 강해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의 열망은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빠지고

노년의 부부의 담담한 사랑처럼 바뀐 것도 같습니다. 

 

노년의 부부는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 하고

알려고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잘 알고 있고,

서로 맞추고 닮으려고 애쓸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맞춰져있고 닮아있으며,

놓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안에 깊이 들어와 있지요. 

 

또 다른 차원에서도 저의 변화를 좋게 보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를 향한 시선이 전만 못한 것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느님,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로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프란치스코를 우상적으로 바라보던 것이

이제는 프란치스코가 바라보는 하느님을 보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사랑이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랑이듯이 말입니다. 

 

물론 제가 성녀 글라라만큼 프란치스코를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성녀 글라라처럼 프란치스코가 보는 것을 같이 보는 것은 맞습니다. 

 

불교의 우화 중에 이런 것이 있지요.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물이 너무 불어나 아주 위험했습니다.

여러 차례 그냥 건너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고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타고 건널 것을 찾는데 마침 배를 발견하였고,

그 배 덕분에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사람은 강을 건너고 나서도

그 배가 너무 고마워 버리지 못하고 지고 계속 갔습니다.

배는 건너기까지만 필요한 것인데 계속 배에 집착했던 것이지요. 

 

사실 프란치스코나 프란치스칸 영성도 하나의 배일뿐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면 버려야 합니다.

도착지에 도착하면 약도가 필요 없고 그래서 버리듯 말입니다. 

 

성녀 글라라는 이렇게 유언에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이 되어주셨는데

성 프란치스코가 그 길을 알려주었다고 말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알려주는 약도입니다.

약도는 길을 찾게 하고, 옳게 가게 하기에 필요하고 소중하지요.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소중합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