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 3회) - 꼭 필요한 것 한 가지

dariaofs 2015. 10. 6. 06:07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Maria Francisca)는 안나 마리아 로사 니콜레타 갈로(Anna Maria Rosa Nicoletta Gallo)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6세 때에 부친이 어느 집안의 자제와 혼인하도록 강요하였으나 자신은 이미 하느님만 사랑하기로 결심한 후라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방안에 가두고 빵과 물만 주는 등 갖은 학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한 단계로 받아들이며 인내하였고, 어머니가 그녀를 설득하려 하자 자신은 작은 형제회 3회 회원이 되겠다는 뜻만 밝혔다. 결국 그녀는 1731년 9월 8일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의 주요 신심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후 38년 동안이나 교구사제인 요한 페시리의 사제관에서 일하였다. 이때 그녀는 신비스런 현상들이 몸에서 일어남을 감지하기 시작했는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거나 사순절의 금요일이 되면 예수님의 수난에 버금가는 고통을 앓기 시작하였다. 즉 게세마니(Gethsemane) 동산의 번뇌, 매 맞음, 가시관을 쓰심, 모욕, 침 뱉음, 죽음에 이르는 고통 등이었다. 사실 그녀는 오상 성흔을 이미 받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그녀에게는 더 많은 신체적인 고통이 따랐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자발적인 고행까지 행하였다. 한 번은 연옥 영혼들의 고통을 체험하였다고 한다.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는 프랑스 혁명 초기까지 살았다. 그녀는 이 혁명의 무서움을 미리 예언하였다. 성녀의 유해는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 델 몬테(Santa Lucia del Monte) 성당에 모셔졌다. 그녀는 184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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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주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마리아의 몫은 좋은 몫이고, 마르타의 몫은 나쁜 몫이라는 건가요?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고 그것은 마리아가 택한 것이니

마르타가 택한 몫, 곧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리고 이 말씀은 마르타를 나무라시는 말씀인가요?

 

이렇게 이해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요.

주님께서 뜻하신 것은 마리아가 택한 몫이 나쁜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마리아가 택한 몫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실상 누구도 아무 일 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어떻게 굴러가고,

예수님조차도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십니다.

예를 들어, 원장인 제가 지금 수도원 비우고 피정 지도를 보름이나 하는데

저 대신 집안일을 해주는 형제들이 없으면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마르타가 하고 있는 일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무시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불평불만하며 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 일의 수고를 알아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며,

그 일을 너무 근심걱정하며 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 일로 인해 다른 사람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며,

일 중독자처럼 일의 노예가 되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상 우리는 일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불평불만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것인데 그 일이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것이지요.

 

또 일의 수고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불평불만을 하곤 합니다.

남의 인정을 못 받으면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하며 너무 근심걱정이 많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봐 근심걱정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종종 일로 인해 인간관계가 나빠집니다.

자기는 고생 고생하는데 다른 사람은 놀고먹는다고 비난하고

내가 하는 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못마땅해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일중독이고, 일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사랑을 잃을 때 무섭게 일에 빠져 사는데

그것은 사랑이 없는 그 빈 곳을 일로 채우려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기도도 안 되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가 단지 이렇게 일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뿐일까요?

 

이렇게 인간적인 차원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라는 말씀의 뜻을 잘 이해치 못한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하건 하느님 안에서 하는 것으로서

하느님 안에서 일하고, 하느님 안에서 친교하며,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의 일도 기도이고, 친교나 쉼도 기도가 되고, 성가가 될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오늘

기도 없는 일,

사랑 없는 일.

하느님 없는 일,

한 마디로 성사가 아닌 일은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는 오늘 하루가 되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