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해드비제스 수도자
성녀 헤드비지스(Hedwigis)는 독일 바이에른(Bayern)의 안데흐스(Andechs) 성에서 베르톨트(Berthold) 공작의 여덟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그녀는 프랑코니아(Franconia)의 키칭겐(Kitzingen)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12세 때에 18살의 폴란드 왕자이자 후에 슐레지엔(Schlesien, 실레지아)의 공작이 된 하인리히 1세(Heinrich I)와 결혼하였다.
남편은 매우 열심하고 또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아내의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폴란드 브로추아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의 설립을 후원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수도회에 아낌없는 후원을 보냈다.
또한 1202년 노이마르트(Neumarkt)의 병원에서 나환자 여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아내의 활동에 감동을 받아 트레브니츠(Trebnitz)에 있는 자신의 땅에 시토회 수녀원을 지어 기부하였다. 이 수녀원은 슐레지엔 지방에 세워진 첫 번째 여자 수도원이었다.
성녀 헤드비지스와 하인리히 1세 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있었다. 1238년에 남편과 사별한 성녀 헤드비지스는 자신이 세운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여 큰 덕을 쌓았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물질적, 영성적 이익을 위하여 늘 헌신하였으나, 자기 자신은 극도의 가난 속에서 하느님만을 섬겼다고 한다.
헤트비히, 야드비가(Jadwiga) 등으로도 불리는 성녀 헤드비지스는 1243년 10월 15일 트레브니츠의 수녀원에서 세상을 떠나 수녀원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미 성인으로 불렸던 그녀는 1267년 3월 26일 교황 클레멘스 4세(Clemens IV)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슐레지엔 지방의 수호성녀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동정
클로드 알라코크와 필리베르트 라멩의 딸인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는 1647년 6월 22일 프랑스 샤롤레 지방 베로브르의 로트쿠르에서 태어났고, 그녀가 8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자 샤롤레의 성녀 클라라(Clara) 수녀회의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그러나 15세가 될 때까지 5년 동안은 류머티즘 열로 인하여 자리에 누워서 지냈는데, 어릴 때부터 성체께 대한 신심은 남달리 뛰어났다. 그녀는 결혼을 거절하고 1671년 6월 20일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 이듬해 11월 6일 ‘마르가리타 마리아’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서약을 하였다. 그녀는 모범적인 수녀였으나 유머 없는 수녀로 통했던 것 같다.
그녀는 1673년부터 1675년 사이에 그리스도의 환시를 4번이나 경험하였다. 이러한 환시에서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당신의 성심께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는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알렸고, 특별히 첫 번째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매주 목요일 밤에 성시간을 갖고 구속사업에 참여하라는 신심을 그녀에게 교육시켰으며, 예수 성심 축일의 제정을 요구하셨다.
그녀는 자신이 환시 중에 받은 교육을 따르려는 노력 중에 장상으로부터 수많은 퇴짜를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온갖 장애를 극복하였으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발현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신의 수녀회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수녀원의 고해신부였던 성 클로드 드 라 콜롬비에르(Claude de la Colombiere, 2월 15일) 신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콜롬비에르 신부는 파레이르모니알의 예수회 원장이었는데, 그는 마르가리타의 환시가 올바르다고 선언하였다. 1684년 멀랭 수녀가 원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수도원 내의 반대도 종식되었으며, 후일 그녀는 수련장이 되었다.
1686년 초에는 수녀원에서 예수 성심 축일을 거행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2년 후에는 예수 성심께 봉헌된 경당이 수녀원 뜰에 세워졌고, 곧이어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는 관습이 전세계의 성모 방문 수녀회로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마르가리타 마리아는 1690년 10월 17일 수녀원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1864년 9월 18일에 시복되었으며, 1920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마르가리타와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 8월 19일) 그리고 성 클로드 드 라 콜롬비에르는 ‘성심의 성인들’로 불린다.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은 1765년에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선포되었으니, 그녀의 사후 75년 만의 일이었다.
강론 : (루카 12,1-7)
<박해, 유혹>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루카 12,3)."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이 말씀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나를 증언하여라.",
즉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4-5)."
이 말씀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혼의 멸망'입니다.
'박해자들'은 우리의 육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즉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 권한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의 육신에 대해서도, 또 영혼에 대해서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따라서 죽는 것이 두려워서 하느님을 배반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배교하고 박해자들에게 굴복하면 육신의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순교하면,
그것은 육신의 목숨은 잃어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박해를 막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박해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그들도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회개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박해를 막아 주시지 않는 것은,
신앙인들이 죽는 것을 내버려 두시는 일이 아니라,
박해자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적이 될 것인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인가?
박해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예외적으로 직접 개입하신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감옥에서 구출하신 일이 좋은 예입니다(사도 12,6-11).
그러나 그 일이 있기 직전에 야고보 사도가 순교할 때에는(사도 12,2)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박해자 사울이 갑자기 회개하고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일입니다(사도 9,3-19).
그러나 그 일이 있기 전에 스테파노가 순교하고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에는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도 나중에 모두 순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경우에는 개입하시고, 어떤 경우에는 보고만 계시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어떻든 그냥 지켜보기만 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방관'이나 '방치'가 아니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뭔가 더 큰 계획,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박해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우리가 박해를 받고 순교하고 그럴 때에도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점입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6-7)."
안 믿는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과 스테파노를 비롯해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참새보다 못한 하찮은 모습으로 살다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스테파노와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은 다음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대단히 고귀하고 위대합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박해는 없지만,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해가 없더라도 '유혹'은 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가장 심한 유혹은 "남들처럼 살아라." 라는 유혹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라.
사제 생활을 하더라도 모나지 않게, 튀지 않게, 다른 신부들처럼 살아라."
라는 권고 같은 유혹.
그런 말은 유혹이라는 표시가 안 나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하는 말이라면,
물리치기도 어렵고, 신념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기준은 다수결이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기준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이더라도 그 길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면 안 됩니다.
고립되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입니다(루카 13,24).
'혼자서라도'(외롭더라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좁은 문'으로 가는 신앙생활이고,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고 해도, 또 사제나 수도자로 산다고 해도,
그 '삶'이 세속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박해가 두려워서 배교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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