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성지

[순례자의 편지] <4> 피덴차

dariaofs 2015. 10. 30. 06:30



소심한 순례자를 도와준 ‘천사들’ 덕분에 무사히


▲ 베르첼리를 지나면서 길은 평탄해지고 끝 없이 펼쳐진 논과 수로를 따라 걷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 산 로코성당에 있는 로코 성인상. 비아 프란체지나 곳곳에서 순례자 로코 성인의 상이나 성인의 이름을 딴 시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벗에게

피덴차의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바에서 크루아상과 카푸치노 한 잔으로 아침을 먹으며 벗에게 소식 전합니다.


오늘로 이 길에 선 지 꼭 한 달이 되었네요. 그동안 372㎞를 걸었고, 파파가 계신 곳까지 584㎞가 남았으니, 전체 여정의 1/3가량을 통과한 셈입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대는 알지요? 내가 얼마나 길눈이 어둡고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나면 당황해서 어찌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인지.


그런 내가 날마다 새롭고 낯선 이 길에서 무사히 한 달을 지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 길, 비아 프란치제나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천사들이 많았다는 뜻이겠지요.

대부분이 친절했기 때문일까요? 유독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례자? 그게 뭐지? 나에게 넌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


과외의 일을 하게 만드는 여행객에 불과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던 여자 분. 작은 마을에서 만난 그녀는 봉사 활동으로 순례자 숙소를 관리하는 것 같았는데,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에 노골적으로 순례자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더군요.

난데없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아 화가 났지만 할 일이 쌓여 있다며 종종걸음치는 그녀를 보면서 문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어요.


그동안 내가 받은 친절과 호의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선물이지 순례자라는 이유로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접이나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참으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했지요.

그녀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나를 가르친 아이도 있답니다. 파비아로 가는 들길에서 만났는데, 그 날은 몸이 참 이상했어요. 출발할 때는 멀쩡했던 몸이 두 시간 쯤 걸었을 때부터 갑자기 힘들어지더라고요.


근처에 마을은 없고, 지팡이에 의지해 엉금엉금 걸으면서 그분께 볼멘소리를 했어요. 날 여기까지 불러냈으니 당신이 알아서 이 상황을 해결하시라고, 난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그런데 한 아이가 불쑥 나타나 자기 공동체가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그것도 가까운 곳에 있다고요.


가이드 북에도 없는 숙소가 근처에 있다고? 믿기지가 않았어요. 더욱이 그 아이는 칭기즈칸 머리에 팔과 다리에 잔뜩 문신을 새겨 넣고 코와 입술에도 더덕더덕 피어싱한 10대 소년이었거든요.

당신이 택하신 메신저를 의심하다니…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속는 셈 치고 따라가면서도 잔뜩 긴장했지요. 뭔가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어떻게 도망을 칠 것인지 궁리하면서요.


그런데 정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이 있고, 그 안에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토미트리움)가 있더군요.


그것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쾌적한. 따라오길 잘했다 생각하고 침대를 고른 후 배낭을 내리는데 내 안에서 그분이 껄껄 웃으시며 짓궂게 물으시더군요.

“어떤 방법으로 네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겠다고 했지? 어떠냐, 내 방법이! 마음에 드느냐?”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답니다. 죄송하다고, 외모만 보고 아이의 말을 의심해서 미안하고, 당신이 즐겨 약하고 보잘것없고 때론 문제아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메신저로 선택하시는 ‘별난 취향’을 가진 분인 걸 잠시 잊고 있었다고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은 약물 중독 청소년들을 위한 공동체였어요. 내가 만난 아이는 그곳에서 재활치료 중이었고요.

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오늘도 이만 줄여야겠어요. 지금까지 그러했듯 남은 여정도 잘 걸어낼 수 있기를 빌어주세요. 나도 이 길에서 그대와 한국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소식 전할게요.


2015년 10월 5일 로마를 584㎞ 앞두고

그대의 벗, 아가타

<문지온,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