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1월 12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5. 11. 12. 09:42

 

 

요한 쿤체빅(Joannes Kuncevyc)은 당시 폴란드 관구였던 현 우크라이나의 볼린(Volyn) 관구에 속한 볼로디미르(Volodymyr)라는 작은 마을에서 1584년에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부모의 가업을 잇기 위해 상업을 배우러 빌나(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Vilnius)의 포포빅(Popovyc)이라는 사람의 도제로 보내졌다. 그러나 수도생활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주인의 딸과 결혼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고, 1604년 빌나에 있는 바실리우스회의 삼위일체 수도원에 입회하여 요사팟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성 요사팟은 1609년에 비잔틴 전례에 따라 사제로 서품되었고, 그 즉시 설교로 유명해진 한편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간의 일치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함께 입회했던 그의 친구 룻스키는 삼위일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으나 그는 폴란드에 새 수도원을 세우라는 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1617년 그는 러시아 비텝스크(Vitebsk)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그 이듬해에 폴로츠크(Polotsk)의 대주교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는 혼란하던 교구를 바로잡기 시작하였다. 로마와의 반목, 기혼 사제, 느슨한 규칙, 폐허화된 성당 등을 고치기 위하여 시노드를 소집하여 교회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즈음에 뜻을 달리하던 일단의 주교들이 요사팟은 실제로 라틴 전례의 사제이며, 로마 가톨릭은 러시아 민중에게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대립주교를 내세웠다. 그래서 극도의 혼란상에 빠졌지만 그는 온갖 위험을 극복하며 비텝스크로 사목방문을 가던 중에 새로운 정교회를 주장하는 분리파에 의해 도끼와 총탄으로 죽임을 당해 드비나(Dvina) 강에 던져졌다. 그는 첫 번째 동방 교회 성인으로서 '일치의 사도'라 불리며, 1643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루카 17,20-25)

 

<하느님의 나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하자(루카 17,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복음서에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아마도 '어떻게' 오느냐? 도 물었던 것 같습니다.)

 

1)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다."입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때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선포는,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선포이고,
또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이 세상 근처 어디쯤에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사야서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이사 9,1; 마태 4,16)."
죽음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빛을 보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가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 때입니다.
밤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메시아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선포했을 때(루카 2,8-14),
그때 그 목자들은 어둠 속에서 주님의 빛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 때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입니다.

 

2) 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오느냐는 질문은,
그 나라의 '완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어도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뒤의 24절에,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번개가 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이 오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루카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이사야서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2; 루카 4,18-19)."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해방 선포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복음을(해방을) 선포하셨어도
이 세상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들이 모이고 합해져서 이 세상이 변화됩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마르 4,26-29), '겨자씨의 비유'(루카 13,18-19),
'누룩의 비유'(루카 13,20-21)' 등은 바로 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들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

 

3)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라는 말씀에는
그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뜻도 들어 있고,
그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라는 뜻도 들어 있고,
우리가 우리 가운데에서(이 세상에서) 그 나라가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1) 하느님의 나라는,
정치인들이 정부를 만들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나라입니다.
모두가 시민이고, 모두가 통치권자입니다.
그 나라에는 지배 계급도 피지배 계급도 없습니다.
상류층도 하류층도 없습니다.
부유층도 빈곤층도 없습니다.
묵시록에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묵시 22,5)."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또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동시에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느님(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노력해서 건설해야 하고, 완성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일해야 하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