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1월 11일 연중 제32주간 수요일(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5. 11. 11. 05:42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의 사바리아(Sabaria) 태생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이교도 장교의 아들로 부모가 파비아(Pavia)로 전속될 때에는 15세였다. 이때 자신의 뜻과는 달리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로마(Roma)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예비자가 되었다.

아미앵에서 지내던 337년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는데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를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신비 체험 후 마르티누스는 18세 때 세례를 받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푸아티에(Poitiers)의 힐라리우스(Hilarius)를 찾아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고, 일리리쿰(Illiricum)으로 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싸움으로써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였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아리우스파이던 밀라노(Milano)의 주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는 잠시 갈리나리아 섬에 숨어 있다가 360년에 프랑스 지방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푸아티에의 주교인 성 힐라리우스로부터 도움을 받고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이윽고 다른 은수자들이 그에게 몰려오므로 이 공동체는 갑자기 큰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것이 프랑스에서의 첫 번째 수도 공동체가 되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지낸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개인생활은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은수자로서 계속 생활하였다.

그가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하니 이교 신전의 파괴와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또 계시와 환시로도 유명하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또한 그는 프리실리아누스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프랑스 지방의 최고의 성인이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인 마르티누스의 경당은 유럽의 주요 순례지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강론   :   (루카 17,11-19)
 

<그들 가운데 한 사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병자 열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생기는데,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본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3)." 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 17,14)."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집니다(루카 17,14).
즉 병이 낫게 됩니다.

 

그들의 병이 나은 것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해 주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병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병자들의 말은, 병을 고쳐 달라는 뜻입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병을 고쳐 줄 테니 사제들에게 가서 병의 치유를 확인받아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병자들 입장에서는 믿음을 시험하는(믿음의 시련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제들에게 가는 것은 병을 고친 다음에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병이 나병이었기 때문에
병을 고친 뒤에는 사제들의 공적 확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즉시 고쳐 주시지도 않았고,
'언제' 고쳐 주실 것인지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병자들은 병이 낫기 전인데도 예수님의 말씀만 믿어야 하고,
사제들에게 가서 병의 치유를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 상황 자체가 시련이고 시험입니다.

 

이 상황에 연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열 명 모두 예수님께 병의 치유를 청했고, 치유의 은총을 이미 받았다고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사제들에게 갔고, 가는 동안에 병이 나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믿은 대로 치유의 은총을 받은 병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부터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5-19)"

 

다른 '아홉'은 사제들에게 갔을 것이고,
병이 나은 것을 공적으로 확인받았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각자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신 일을 취소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어떻든 이야기 속에서는
그들은 몸만 건강해지고 진정한 구원은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사제에게 가는 것을 중단하고 예수님께 되돌아왔습니다.
되돌아온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은
그냥 가버린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의 믿음이
병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냥 가버린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고,
간청했고, 바라던 대로 병이 나았지만, 거기에서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 몰려와서 병을 고쳤던 수많은 병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병이 나은 다음에는 거의 대부분 미련 없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명만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병을 잘 고치는 예언자, 또는 랍비였을 뿐입니다.
메시아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께서 주시는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되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인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큰 소리로' 찬양했다는 것은 그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으니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하느님께 경배 드리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하느님과 같으신 분,
또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라는 말씀은, 몸의 건강을 되찾은 것에만 만족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그들이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그들도 병이 나은 것을 감사드리면서 하느님을 찬양했겠지만,
하느님께 진정한 영광을 드리게 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음으로써
메시아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을 받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금 나의 믿음은, 몸의 건강만(현세적인 복만) 바라는 믿음인가?
참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믿음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몸이 아플 때 안 아프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건강을 되찾은 다음에는?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