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2월 7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5. 12. 7. 05:46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갈리아(Gallia)의 지방 장관으로 재직한 아우렐리우스의 아들로 339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사망 후 로마(Roma)에서 인문 교육을 받아 수사학과 법학 외에 그리스어에도 능통하였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그는 국가 관리의 길을 택해 뛰어난 실력과 좋은 가문을 배경으로 빨리 출세하였다.

시르미움(Sirmium,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의 미트로비카)의 지방 법원에서 잠시 근무를 하다가 지방 장관 프로부스(Probus)의 고문이 되었고, 그의 추천으로 370년에 에밀리아 리구리아(Aemilia-Liguria)의 수도인 밀라노의 집정관이 되었다.

 

암브로시우스가 그 지방을 다스리던 때 밀라노에는 서방 교회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대표자인 아욱센티우스(Auxentius)가 주교로 있었다. 아욱센티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파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자 후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하였다.

 

집정관인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의 질서 회복을 위해 이 문제에 개입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정통 교리를 따르는 신자들을 중재하면서 암브로시우스는 성당에 모여 있던 신자들에게 평화적 방법과 대화를 통해 화해를 추구하자고 연설을 하였다.

이때 뜻밖에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암브로시우스가 주교로 선출되었고 그는 할 수 없이 수락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니케아(Nicaea)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은 뒤, 8일 후인 373년 12월 7일 주교품을 받았다.

 

주교직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지위이다. 그리고 밀라노는 로마제국 서부 지역의 행정적인 중심지였기 때문에 주교 역시 불가피하게 정치에 개입되어 있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개종자들, 수없이 많은 이교도들 그리고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들 등 모든 문제를 새 주교인 암브로시우스가 해결해야만 했다.

주교가 된 후 성 암브로시우스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사하고, 수도자와 같이 청빈과 극기의 생활을 하면서 신학, 성서 등을 연구하였다.

 

그에게 신학을 가르쳐 준 사람은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된 심플리키아누스(Simplicianus) 신부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당대의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서방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성 암브로시우스가 주교품을 받은 지 약 1년 만에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새 황제의 고문관이 된 암브로시우스는 황제를 설득하여 니케아 신앙 고백을 따르도록 하고 서방에서 아리우스파를 축출하는 법안을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제가 전투에서 막시무스에게 살해되자 암브로시우스는 또 다시 막시무스를 설득하였다.

또한 그는 로마의 원로원 회의실에 승리의 여신상과 제단을 재건하려는 로마 시 집정관 심마쿠스(Symmachus) 일파의 시도를 분쇄하는데 성공하였으며, 385년에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어머니로 아리우스주의 추종자인 황후 유스티나에 의해 일단의 무리들에게 밀라노의 성당들을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내주라고 명한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성공적으로 저항하였다.

390년 테살로니카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로마 총독을 살해하자 그에 대한 징벌로써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군인들에게 진압을 명령했을 때, 군인들의 무차별 진압으로 7,000명이 살해당하였다. 이에 성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범죄의 중대함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서 암브로시우스는 참회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공식 참회 행위로 보속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제는 이에 순순히 응해 성탄 때 제복을 벗고 참회복으로 갈아입고 통회하였다. 암브로시우스는 항상 다음과 같은 원칙 밑에서 행동하였다. “황제는 교회 안에 있다. 그는 교회 위에 있을 수 없다.”

393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갈리아에서 아르보가스투스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는데, 그들의 대표자 에우게니우스는 우상 숭배를 재건하려고 시도하는 무리들이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그들의 살인과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마침내 제국 내에서 우상 숭배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수개월 후에 죽게 되자, 성 암브로시우스가 그의 장례 때 기도하고 설교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도 그 후 2년 뒤에 밀라노에서 운명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초기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분이며,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던 서방 세계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부흥을 새로운 단계에 돌입시킨 분이시다.

 

또한 세속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했던 행정가이면서도 성서, 신학, 신비신학 등 설교를 중심으로 설파한 그의 지식 또한 괄목할만하였다. 그는 설교를 통해 이단에 빠져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를 이끌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도록 했으며, 387년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의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성 암브로시우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가운데 한 분으로 추앙받는다. 또한 그의 저서 중에 “신비에 대해서”란 책이 있는데, 여기서는 주로 세례, 견진 그리고 성체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그는 시편을 대중적인 찬미의 기도로 활용하도록 가르친 첫 번째 인물이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성직자들의 직무론”(De Officiis Ministrorum), “동정녀”(De Virginibus), “신앙론”(De Fide) 등이 있다.

 

 강론   :   루카 5,17-26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루카 5,26)

The healing of a paralytic

 

 광야에서 행복을 찾는 길

오늘 복음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행복의 터인 광야로 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첫 부류는 중풍병자의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군중 때문에 중풍병자인 친구를 예수님이 계시는 안으로 들일 수 없자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냅니다(5,18-19).

그들은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 안에서 연대하여 벗의 치유와 해방을 위해 진지하고도 끈기 있는 노력을 합니다. 그들이 친구를 데려간 곳은 '예수님 앞 한가운데', 곧 자유와 행복의 한복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며 고쳐주십니다(5,20). 결국 중풍병자는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병과 죄 모두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와 도움, 눈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배려 속에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웃과 이 사회의 고통과 시련, 하느님 부재(不在)의 현실을 보며 모두 안에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기도하고 연대해야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대는 사랑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연대는 이득을 얻고 기득권과 재물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부류는 당대의 종교지도자요 사회 지도층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시자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구원과 해방을 의심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고정된 습관, 안전장치인 제도에 기대어 행복의 땅, 광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중풍병에 걸린 이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시자 그는 즉시 일어나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5,24-25).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고 두려움에 차서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합니다(5,26).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죄까지 용서해주신 것을 신기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마음이 굳고 눈이 멀어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삶의 매순간은 우리를 신앙의 선택과 결단으로 내몹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 무관심과 차별,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며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겠습니다.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처럼 확고한 믿음과 인내 가운데 연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자신의 틀에 박혀 하느님의 손길을 의심하고 익숙한 삶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습니까?

암브로시오 성인은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옹호하였고,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는 한편, 황제의 권위에 대항하여 교회의 독립과 자주성을 옹호하였습니다.

 

우리도 확고한 신앙과 불타는 열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했던 이 성인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믿음과 인내로 서로 연대하며, 복음적 불안정의 광야에서 안주하지 않고 순수한 눈길로 하느님을 알아보는 경이로운 날이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