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13-18)
<하느님은 왜?>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헤로데가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인 것은
자기의 왕권을 위협하는 '새 임금'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의 위협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찾았습니다(마태 2,2).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뜻합니다(마태 2,4).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라는 말은
'나중에 자라서 메시아가 되실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 라는 뜻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임금'을 찾았으면서도
왜 처음부터 곧장 왕궁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들은 분명히 메시아가 헤로데 왕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왕궁에는 갈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헤로데 입장에서는
헤로데의 왕권을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또 헤로데가 생각했던 '메시아'는
종교적인 구세주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였습니다(마태 2,6)."
따라서 헤로데가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인 일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정적을 제거하려고 한 독재자의 살인입니다.
만일에 동방 박사들이 헤로데의 부탁대로
메시아가 누구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 헤로데에게 알려 주었다면,
헤로데는 예수님만 죽였을 것이고, 다른 아기들은 무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천사의 지시를 받고 그냥 가버렸고,
메시아가 태어난 곳이 베들레헴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헤로데는
자기의 적을 확실하게 제거하려고 아기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가정은 다른 도시로 피신한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이집트로) 피신했습니다.
헤로데의 통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혹시 헤로데는 베들레헴뿐만 아니라
자기가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전체를(유다 땅 전역을)
전부 다 수색했던 것은 아닐까?
어떻든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는 반감을 가질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님만 구하시고
다른 아기들은 살해당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
천사는 왜,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다른 부모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요셉에게만 알렸을까?
요셉은 왜, 자기가 들은 것을 다른 집에 전해 주지 않고
그냥 자기 가족만 데리고 떠났을까?
우리는 실제 상황을 모릅니다.
혹시 천사가 다른 부모들에게도 알려 주었지만,
그들이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지 못했거나, 천사의 말을 안 믿은 것은 아닐까?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안 믿은 것처럼...
또는 요셉이 자기가 들은 것을 다른 집에도 전해 주었지만
사람들이 그 말을 안 믿고 비웃기만 한 것은 아닐까?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에 롯이 사위들에게 함께 떠나자고 말했을 때,
사위들이 롯의 말을 비웃은 것처럼...(창세 19,14)
반대로, 천사의 말을, 또는 요셉의 말을 믿고 피신해서
자기 아기를 구한 부모들도 있지 않았을까?
피신하려고 했지만 멀리 가기 전에 헤로데의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아기를 잃은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피신하려고 했을 때,
"괜찮다. 가만히 있어라." 라고 선동한 사람은 없었을까?
지금까지 말한 의문은 성경에는 근거가 없는,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짐작인데, 어른들의 일에 관한 짐작일 뿐입니다.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했든지, 어떻게 행동했든지 간에
아기들이 너무나도 억울하게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죽은 아기들은 (그 아기들의 부모들도) 예수님을 몰랐고,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시기에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아기들의 죽음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사고들이 연상됩니다.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 말고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사람들이 죽은...
우리는 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대체 왜?"
(진짜로 신이 있는가?
신은 인간 세상의 일에 대해서 무능한 존재인가? 무관심한 존재인가?)
이 질문은, 카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부터 시작된 질문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답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기들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헤로데의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죄 없는 아기들이 죽은 일은,
예수님 자신에게도, 또 마리아와 요셉에게도 평생의 고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우리는,
희망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와 악을 막아야 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더 이상 그런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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