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dariaofs 2016. 1. 27. 07:44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사랑이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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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오늘 사무엘기의 얘기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평안을 찾은 뒤

자기는 좋은 궁전에서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있으니

주님을 위해 성전을 잘 지어드려야겠다는 말씀에 대한 주님의 응답입니다.

   

어떻게 보면 공치사功致辭 같은데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공치사나 하는 분은 아니겠지요?

물론 그런 거 아니고, 분명 그런 거 아닐 것입니다.

   

요약을 하면 하느님께서는 지금까지 다윗에게 이렇게 해주셨고,

앞으로도 이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을 성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주시는 분이란 것이 무슨 뜻입니까?

안 주시는 분, 인색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겠습니까?

받지는 않고 주시기만 하는 분이라는 뜻이겠습니까?

   

이런 뜻이 다 포함되어 있지만 제가 얘기하는 <주시는 하느님>

주시는 것이 그분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하느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보면 여러분의 사랑과 비교할 때 저의 사랑이 아주 일천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비교하면 더더욱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천한데도

사랑으로 가득할 때는 그가 좋아하기만 하면 있는 것 다 주고 싶지요.

   

일천한 사랑의 저도 이러한데 하느님은 본질이 사랑이시니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 일체 없는 완전한 사랑이시고

그러기에 주시는 것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지요.

받자고 하시는 것 없고, 받자고 주시지도 않으십니다.

받는 것은 부족함이 있고, 필요한 것이 있는 존재가 받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하느님은 우리의 찬미도 받지 않으시고

기도나 제물도 받지 않으신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찬미를 드리면 하느님은 찬미를 받으시고,

우리가 제물을 바치면 하느님은 제물을 받으시고,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은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찬미와 제물과 기도를 받으심은

부족을 채우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미와 제물과 기도를 소중히 여기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부잣집 주인은 고마움 때문에 손수 지은 감자를

촌부가 가져오면 더 좋은 것 천지이니 도로 가져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자한 주인이 같은 감자를 마음과 정성을 생각하며

고맙게 받아주고 소중이 받아준다면 그것은 그 주인의 사랑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주시고,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사랑으로 드리는 것을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일 경우에는 말 그대로 받는 것도 주는 것이고,

사랑일 경우에는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받아준다>는 말은 받다+주다가 아닙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지금까지 주셨고, 지금도 주시고, 앞으로도 주실 하느님,

우리의 찬미와 기도와 감사를 사랑으로 받아주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오늘 깊이 묵상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