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월 28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6. 1. 28. 03:03

 


이탈리아 로마(Rome)와 나폴리(Napoli)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Roccasecca) 가족성(城)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퀴노의 백작 란둘프(Landulph)와 어머니 테오도라(Theodora)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불과 다섯 살의 나이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고, 1239년경에는 그의 교육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나폴리 대학교를 다녔으며, 1244년에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이때 가족들은 그를 강제로 데려다가 15개월 동안이나 로카세카 성에 감금시킨 적도 있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1245년에 다시 수도회로 돌아갈 수 있었고, 1245년부터 3년 동안을 파리(Paris)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Koln)에서 성 대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 11월 15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여 125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250년과 1551년 사이의 어느 때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성 토마스의 스승이었던 성 대 알베르투스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없는 황소는 그의 울부짖음으로 전 세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


그 후 그는 주로 나폴리(Napoli), 아나니(Anagni), 오르비에토(Orvieto), 로마(Roma) 그리고 비테르보(Viterbo)에서 가르쳤으며, 1259-1264년 사이에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1269년에는 수도사제와 교구사제간의 논쟁에 말려들었고,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시게르(Siger)와 요한 페캄(John Pecham) 그리고 파리의 주교 에티엔느 탕피에의 철학적인 가르침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리옹(Lyon) 공의회에 참석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을 토의하라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1월 10일)의 부름을 받았으나, 리옹으로 가는 도중 테라치나 교외 포사 누오바(Fossa Nuova)에 있는 시토 수도원에서 1274년 3월 7일 운명하였다.

그는 1323년 7월 21일에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1567년에는 교황 비오 5세(Pius V)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1880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모든 대학교와 대학 그리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그에게 붙여진 칭호는 '보편적 박사'(Doctor Communis) 또는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에서 모든 신학생들이 그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주요 사상은 곧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자이며, 그의 사상은 그의 사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지배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신앙과 이성 간의 예리한 구분으로 특징지어지는 탁월한 저작들이다.


그의 미완성의 대작인 "신학대전"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뿌리로 받아들여질 만큼 위대한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지적 능력 외에도 아퀴나스는 지극히 겸손하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는 환시, 탈혼 그리고 계시를 체험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성무일도를 집필했고,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찬미가도 지었다. 또한 그는 주님의 기도(Pater Noster),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 그리고 성서 일부에 대한 주해서를 썼다. 한마디로 그는 지성과 성덕의 금자탑이었다.
 


                             강론 : 마르 4,20-25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마르 4,21) 



Parable of the lamp


세상에 빛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예수님께서는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4,21)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로 이제껏 제자들에게만 계시된 메시아 비밀,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감취진 채 있을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드러나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빛”(요한 8,12)이신 예수님께서는 정치가와 종교지도자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빛이신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자 하셨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바쳐 헐벗고 아픈 이들, 소외되고 묶인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오신 빛이십니다.

"빛의 자녀답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야 합니다."(에페 5,11)


고통과 시련, 박해와 반대에 맞닥뜨릴 때는 물론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빛이신 예수님을 반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등불로서 살아가려면 빛이신 예수님께 얼굴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이신 분의 뒤를 따라가려면 먼저 빛 앞에 자신을 둠으로써 자신의 어둠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등불을 외면할수록 어두움 속을 헤맬 뿐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께 얼굴을 돌려 그분과 친밀하고도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자신의 처지와 정체성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빛이신 분께 얼굴을 돌려 깊은 친교를 가짐으로써 모든 사람들과 세상, 피조물에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자세를 지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이신 하느님과 빛이신 예수님처럼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푸는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의 제자로서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아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곧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온 몸으로 실천함으로써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근심걱정과 탐욕에 물든 사람은 감추려 들지만 하느님의 신비와 진리는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자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말과 생각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내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사람이 등불인 예수님의 참 제자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등불이 자신을 태워 자기 주변을 비추고 타인을 위해 존재하듯이 우리도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늘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타인의 행복과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새겨듣고(4,24) ‘등불’이요 ‘세상의 빛’이신 하느님 앞에 자신을 두고 그분의 사랑과 정의의 빛을 온몸으로 반사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