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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가톨릭]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 수녀 10년 만에 고흥 온다

dariaofs 2016. 2. 1. 15:37



5월 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식 참석

지난 1970년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보던 마가렛(뒷줄 왼쪽 첫번째)-마리안느(뒷줄 오른쪽)수녀가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소록도에서 40여년간 한센인을 위해 봉사하다 홀연히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두 ‘할매 수녀’ 중 한 분이 소록도를 다시 찾는다.

고흥군은 지난 31일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오는 5월에 ‘할매 수녀’ 두 분을 모두 초청하려고 했지만 마가렛 수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마리안느 수녀만 소록도를 찾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리안느 수녀도 최근까지 암 투병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현재 상태는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흥군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할매 수녀’로 불리던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자원봉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검토 중이다.

누구도 다가서려 하지 않았을 때 비닐 장갑하나 끼지 않고 한센인을 간호했던 이들 외국인 할매 수녀의 고귀한 봉사정신과 소록도에서의 삶이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소록도성당의 프란치스코 주임신부가 두 할매 수녀의 삶을 정리해 놓은 메모를 토대로 살펴본 이들의 삶은 단순한 봉사를 초월해 인류애를 담고 있다는 고흥군의 설명이다. 고흥군이 할매수녀의 노벨상 후보 추천을 진행하는 이유다.

두 할매수녀는 갓 20살을 넘긴 꽃다운 나이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멈추고 전 국토가 폐허더미였던 때다.

두 수녀는 1952∼1955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룩의 간호학교에서 같은 학년 같은 방을 쓰며 기숙사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 사이다. 두 수녀는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걷다가 나주성당의 초대 신부인 해롤드 헨리 대주교의 주선으로 다시 만난다.

당시 조창원 소록도병원장은 낙태 중지 후 소록도에서 태어난 한센인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음을 헨리 대주교에게 호소했고 5500명에 달하는 환자를 치료할 인력도 부족한데다 아이들을 돌보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헨리 대주교는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면서 오스트리아 대주교에게 소록도 봉사인력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고 마리안느·마가렛 두 수녀가 뽑혔다.

두 수녀는 헨리 대주교와 5년 계약으로 1962년 2월 소록도에 왔지만 그 계약은 43년이란 긴 세월로 이어졌다.

두 수녀의 원래 임무는 한센인이 낳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지만 헨리 주교의 뜻에 따라 인도에서 6개월간 한센병에 관한 교육을 받은 뒤 한센인 치료와 구호에 전념하게 된다.

이들은 한센병 교육 후 소록도 병원에 다시와 찾아와 첫 활동으로 한센인과 함께 식사하기를 실천했다. 이 사건은 ‘나병환자’라며 이들을 격리하고 멀리하며 국내 의료진조차 직접 치료를 꺼렸던 당시 소록도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외국인 의료진이 환자의 상처 부위를 맨손으로 직접 만지며 약을 발라주는 치료과정은 나병환자와 함께 밥 먹는 모습과 함께 세상에 퍼지면서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전염관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고 손가락질했던 병원의 다른 직원들도 6개월이 지나도 이들 외국인에게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자 그때부터 한센인들을 ‘그냥 환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두 수녀의 소록도에서의 삶은 종교적 수행을 넘어선 고됨 그 자체였다고 한다.

두 수녀는 매일 새벽 5시부터 병실을 돌며 따뜻한 우유를 환자들에게 먹이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고,

새벽 기도와 미사를 마치면 병원 옆 한센인 마을에서 병원에 찾아온 환자들을 위해 음식을 내주고 한센병 치료제인 람프렌과 약을 주는 일상을 반복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냄비에 음식을 만들어와 직접 먹이기도 했다.

5년간의 봉사와 헌신으로 소록도의 환자 수가 3000명대로 떨어지자 그동안 함께 치료활동에 투신했던 다른 외국 의료진은 1971년 4월 그들이 사용했던 수술 도구 등을 남기고 귀국했다.

하지만 그들 중 마리안느·마가렛 수녀는 소록도에 남아 한센인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했다.

이들이 극동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국에 알려지자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재정지원도 받았다. 이 도움으로 소록도 병원 초창기 영아원, 결핵병동, 정신과병동, 목욕탕 건물이 세워졌다.

의료인 집안이었던 마가렛 수녀의 가족도 소록도 병원에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의약품을 지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두 수녀는 인도에서 돌아와 2005년 귀국할 때 까지 지금은 ‘마리안느 마가렛’으로 이름 지어진 작은 관사에서 검소하게 생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수녀는 ‘할매 수녀’로서 은퇴의 나이를 넘어 70대의 고령에 접어든 2005년 11월 소록도를 갑자기 떠났다. 누구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고 편지만을 남겼다. 그것도 편지를 관사에 두지 않고 광주에 와서 우편으로 소록도에 보냈다.

두 수녀는 편지를 통해 “떠남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헤어지는 아픔은 그대로 남기에 편지로 대신한다”며 “자신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항상했던 말,

제대로 일할 수 없고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실천할 때”라고 떠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두 수녀는 “부족한 외국인이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드린다”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냈다.

 고흥=주각중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