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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특별 희년] (8)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길벗사랑 공동체 봉사자 ...박은희 마리아

dariaofs 2016. 1. 29. 04:30



도시락보다 반가운 자비로운 손길





            15일 낮 12시 서울 남대문경찰서 뒷골목, 도시락을 실은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매주 화ㆍ수ㆍ금ㆍ토요일 쪽방촌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나눠주는 길벗사랑 공동체(지도 이재을 신부) 봉사자들이다.

“이쪽 골목부터 들어갈게요. 도시락 10개만 꺼내주세요!”

쪽방촌 골목에 울려 퍼진 활기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봉사 진행을 책임지는 박은희(마리아, 54, 서울대교구 화곡동본당)씨. 박씨와 봉사자들이 손에 도시락을 가득 들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이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떤 이는 박씨를 부둥켜안고 볼을 비비기도 했고, 다른 이는 손을 잡거나 두유 같은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처음엔 도시락 드릴 때 안 받는 분도 계셨어요.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니까 어느새 이분들도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나중엔 전기장판이나 옷같이 필요한 것을 부탁하고 구해다 줄 정도로 가까워졌어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박씨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5년 전, 영등포역 노숙인 야간 간식 봉사에서 이재을 신부를 만나면서다.


쪽방촌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준비하던 이 신부는 박씨에게 길벗사랑에서 봉사할 것을 권유했고, 그 후 박씨는 길벗사랑이 개원하던 2013년부터 쪽방촌 사람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 것처럼, 이 신부님을 통해 제자로 파견돼 길벗사랑에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통해 저 또한 성장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덕에 박씨가 문을 두드리면, 주민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내 문을 열었다.


한 주민은 도시락은 방 한쪽에 세워두고 박씨와 손을 잡은 채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의 메뉴는 갓 지은 쌀밥과 쇠고기 장터 국밥, 어묵볶음. 길벗사랑 공동체는 이렇게 매주 70가정에 따뜻한 도시락을 전한다.

“이곳에 계신 분 중엔 내적인 아픔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가족, 친구, 지인 등과 단절된 채 외롭게 지내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이분들은 음식보다도 누군가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기다려요.


가끔 쪽방촌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기처럼 눈빛이 반짝반짝 빛날 때가 있는데 그때 ‘아, 저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분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사랑이에요.”

‘똑똑….’

방문 안에서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주인을 잘 아는 박씨가 문을 열었다. 성인 한 명이 편하게 눕기도 힘든 좁은 방엔 한 남성이 누워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박씨는 방으로 들어가 널브러진 술병부터 치웠다.


 “왜 몸이 안 좋아지셨나 했더니 술 못 이기시는 분이 술을 드셨네.” “딱 한 잔 마셨는데…. 안 그러면잠이 안 와.” 박씨는 몸을 낮춰 그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쪽방촌은 아픈 분들이 많은 곳이기도 해요. 큰 수술을 마치고 상처가 제대로 여물지 않았는데도 여건이 마땅치 않아 쪽방촌으로 돌아온 분도 계시고,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분들도 계시죠.


그럴 땐 반대로 ‘저분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프실까’란 생각이 들어 손잡고 기도해드려요. 주님께서 이런 제 기도를 종종 들어주셔서 건강이 좋아진 분들도 여럿 계셔요.”

쪽방촌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길벗사랑 공동체만의 공간이 있다. 약 22㎡로 넓진 않지만 매주 봉사자 15명이 돌아가며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따뜻한 밥을 짓는다. 2층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미사도 봉헌한다.

“도시락 음식은 봉사자들이 직접 만들어요. 정성과 사랑을 듬뿍 담아서 요리하죠. 저희에게 도시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도구이자, 쪽방촌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예요.”

박씨와 봉사자들은 약 1시간 동안 쪽방촌 곳곳을 누볐다. 뛰어다니다가도 새로운 주민을 만나면 도시락 신청을 받고, 사람이 없는 집엔 도시락을 봉지에 넣어 문고리에 걸어 뒀다.


 뺨과 코끝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박씨와 봉사자들 사이에선 배달 시간 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봉사하면서 이웃과 나누면 마음속에 행복이 더 많이 차올라요. 물론 가끔 두려울 때도 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냄새를 맡으며 배달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은 선입견만 극복하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원래 봉사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내 안에서 기쁨이 샘솟는 일이랍니다.”

취재 후기


취재했던 날엔 단국대학교 학생과 교수 등 5명이 도시락 배달 봉사에 참여했다. 단체 도시락을 처음 만들어본 학생들은 서툰 모습을 보였다.


몇몇 학생은 일회용 봉투에 국을 담다가 건더기를 주변에 흘렸고, 포장 기계로 입구를 막아 마무리하는 속도는 더뎌 보였다.

그때마다 박씨는 나서서 학생들의 모자란 부분을 대신 채웠다. 숙달된 봉사자들이 합을 맞추면 훨씬 빠르고 쉽게 준비할 수 있을 텐데 굳이 봉사자들을 받아야 했을까. 박씨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쪽방촌 사람들만 생각했어요. 길벗사랑은 오직 아프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평범하게 사는 우리 중에는 영적으로는 노숙인 상태인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 안에는 하느님이 주신 선함이 모두 있는데 영적으로 빈곤한 보통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 선함과 사랑을 드러내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을요. 길벗사랑이 봉사자들에게도 회복과 치유의 공간이 되는 거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길벗사랑 공동체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나누며 사랑을 느끼고 돌아간다. 직접 봉사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후원회원으로 등록해 물질적 보탬을 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재를 마치고 길벗사랑 공동체를 나서기 전, 신청서에 이름과 세례명, 후원 금액을 적었다. 박씨는 “그렇게 기부하면 월급에서 무엇이 남느냐”며 말렸지만, 웃으며 신청서를 내밀고 돌아왔다. 후원 문의 : 070-7534-1040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신년 계획을 하나 추가했다. ‘소외된 이웃을 도와 내 안의 선함 발견하기.’


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