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가치
예수는 말이 없었다. 굳이 말할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려 했고, 죽여야만 했고, 그것으로 다시 사회는 예전처럼 조용해야 했으니까.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결기구)에 소속되어 사회적 주류를 이뤘던 이들에게, 그리고 로마의 눈치를 보며 유다 사회의 인민에게 어떻게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기를’ 주문했던 헤로데와 빌라도에게 예수는 그냥 불순했다.
인민에게 인기가 있었으니까, 인민들을 몰고 다녔으니까, 그래서 사회적 주류의 자리를 위태롭게 했으니까.
![]() | ||
| ▲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루카스 크라나흐.(1538) | ||
예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혁명적이었고 불순했으며 제거 대상이었다.
처녀의 뱃속에서 생겨난 것도 그렇고, 이방인의 땅으로, 죄인의 땅으로 불리던 갈릴래아에서 사회적 주류에 분노하며 살아가던 인민의 편에 선 것도 그러했다.
예수가 선포한 주님의 은혜로운 해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갇힌 이들의 것이었고,(루카 4,16 이하) 사회적 주류는 역설적이게도 소외되었다.
소외된 이가 숨죽여 입 다물어야 하는 건, 전적으로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주류가 소외될 때는 대놓고 떠들어 대며 바락바락 소리 지른다.
죽일 거라고 소리 지를 것이며, 더 무서운 건, 소리가 소리로 끝나지 않고 진짜 죽여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누가 되었건, 죽일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주류의 힘이다. 예수의 죽음은 바로 이 논리에서 이해돼야 한다.
예수가 심문을 받으며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 신랄한 고소(루카 23,10) 앞에 예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거침없는 고소의 소리만 요란하다. 급기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들의 외침에 예수의 죽음은 결정나고 만다.(루카 23,25)
이사야 예언자의 노래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예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도살장 앞에 끌려간 어린양이었다. 죄도 없는데 죽어야 했고, 그 죽음 앞에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내어 바친다.
왜?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했으니까. 당하고 억압받고 갇히고 고통받는 이들 곁에 메시아로 오셨으니까.
예수를 통해 드러난 메시아의 시대는 침묵의 힘을 볼 수 있는 이들 안에서 구체화된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말할 게 없어서가 아님을 알아차리는 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비정함과 위선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는 이,
그래서 입을 다무는 것이 현실의 비겁함과 거짓을 온전히 받아 안고자 하는 연민이고 사랑이며 자비임을 깨닫는 이, 바로 그 사람 안에 하느님 나라, 에덴의 그 낙원이 실현되어 드러난다.
예수 옆에서 함께 죽어 간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은 이런 침묵의 예수를 통해 낙원의 기쁨을 또렷이 보고 즐겼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주류는 외친다.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또한 예나 지금이나 그 소리 앞에 조용히 묵묵히 입을 다물며 살아가는 또 다른 예수는 계속된다.
죽어 가면서 낙원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예수, 그들은 끝끝내 입을 다물 것이다. 세상이 어렵고 힘든 건, 소리가 너무 많아서다. 세상이 아직 낙원이 아닌 것은 침묵 속에 죽어 갈 수 있는 이들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죽음의 자리에 생명이 탄생한다. 시끄러운 저잣거리에선 잘난 맛에 사는 이들의 치기만 득실댈 뿐이다. 잘나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 사이에서 예수는 메시아다.
![]() | ||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6년 3월 23일 성주간 수요일 (0) | 2016.03.23 |
|---|---|
| 2016년 3월 19일 한국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베필 성 요셉 대축일 - 가난하고 의로운 요셉 (0) | 2016.03.19 |
| -지금여기 강론대- [서공석 신부] 3월 20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 루카 22,14-23,56 (0) | 2016.03.18 |
| -가톨릭신문- [염철호 신부] 3월 20일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루카 22,14-23,56) (0) | 2016.03.17 |
| [그림으로 보는 복음묵상] 너희가 말했다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0) | 2016.03.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