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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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26,14-25)
♣ 내 안에 있는 유다의 얼굴을 보며 ♣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행적을 목격하면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유다가 수석사제들을 찾아가 겨우 종 한 명 값인(탈출 21,32 참조) 은전 서른 닢에 그분을 팔아넘기기로 거래합니다(26,14-15). 이 말씀이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유월절 잔치에 어둡고 슬픈 그림자를 던집니다. 우정과 평화의 표시이며 확고한 동지애의 상징인 식탁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26,24) 배반자의 죄악이 극에 이릅니다. 한심하게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이지요. 배반 당사자인 유다는 한술 더 떠서 뻔뻔스럽게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여쭙니다(26,25).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유다의 근본적인 죄는 예수님을 돈으로 저울질한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적 욕구를 충족하려고 예수님보다는 돈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과 무관하게 내 뜻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면서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요?’라고 스스로 후한 평가를 하며 흡족해 하는 모습 안에 유다가 있습니다. 관계단절이 곧 죄입니다. 제자란 예수님의 운명에 함께하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고통 받고 병든 이들의 해방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입니다. 그 러나 우리는 유다처럼 십자가를 함께 지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을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편의를 누리는 도구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자기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느님을 망각해버립니다. 우리 모두 좀 더 겸손하게 내 안의 유다, 곧 이기심과 탐욕,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온갖 우상, 예수님과의 관계 단절, 내 편의 때문에 주님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고 인정해야겠습니다. 하찮은 물질과 욕구 충족을 위해 예수님께 소홀하거나 그분을 배반하여 십자가에 못 박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분처럼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지고 가는 진실한 우리이길 희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기쁨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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