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3,1-15)
<사랑>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2-15)."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은,
1) 제자들에게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주신 일이고,
2) 서로 사랑하라고 '본'을 보여 준
일입니다.
('끝까지' 라는 말에는 '극진히'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성목요일의 세족례는 단순히 '발을 씻는 예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예식'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또 '삶'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모두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뒤에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
34-3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은
"내가 한 것처럼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면서
서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시가 된다."
라는 뜻인데, 이 말씀은 사실상
"섬기는 사랑으로써 신앙을 증언하여라." 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은
그 '섬기는 사랑'의 모범을 직접 보여 주신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서
처음에는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요한 13,8).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3,8).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이라는 말씀은,
"내가 너를 씻어 주는 것을 네가 거부한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주는 사랑을 네가 거부한다면"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서로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나의 계명을 네가
거부한다면"
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너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또는
예수님의 계명 실천을 거부한다면
제자의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3,9-10).
제자들이 깨끗하지 않아서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세족례는 정결 예식이 아니라, '사랑의 예식'이라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그 자리에 유다도 있었습니다.
유다는 최후의 만찬이 끝난 뒤에 떠났기 때문입니다(요한
13,30).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배반자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그가 이미 배반한 것을 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어 주신
것입니다.
배반자 유다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입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실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미안했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소유욕이나 성욕을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아가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복음을 선포하셨고,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고,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전부 다
'사랑'입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기도 하고 사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려면,
사랑에 따르는 십자가를(희생을) 받아들일 각오부터 해야 합니다.
나에게 힘든 일, 내가
싫어하는 일,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모두 피한다면,
사랑을(아가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싫어도, 바라는 것이
아니어도,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그대로 실천해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도 사랑하셨고,
그의 발도 씻어 주셨음을 묵상해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47)"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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