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7월 15일 다해 연중 제15주일 금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6. 7. 15. 05:37





조반니 디 피단차(Giovanni di Fidanza)라는 이름의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아버지 조반니 디 피단차와 어머니 마리아 디 리텔로(리텔라)의 아들로 바뇨레조에서 태어났다.

 

불확실한 전설이긴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이름이라 한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렸을 때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1238년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영국의 유명한 헤일스의 알렉산데르 문하에서 공부하려고 파리(Paris)로 갔으며, 그로부터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되었다.


그는 1248-1255년까지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강의는 새로운 탁발 수도자를 반대하던 교수들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생 아무르의 빌리암을 비롯한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 논쟁에 뛰어들어서,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남겼다.


마침내 125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생-아무르를 단죄하고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을 중단시켰다. 탁발 수도회가 파리에서 다시 부흥될 때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와 함께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와 비슷한 초창기에 성 보나벤투라는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피선되었고, 수도회의 내부 분쟁자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온건한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극단주의 그룹을 단죄하였다.


1260년 나르본(Narbonne)에서 열린 수도회의 총회에서 그는 오랫동안 수도회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는 회칙에 대한 회헌을 선포하였다.

 

그는 1265년 요크의 대주교좌를 거절하였고, 1271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의 선출을 적극 지지하였다.


1273년 그는 알바노(Albano)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로마(Roma)와 동방 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Lyon)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그를 위촉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회기 중인 7월 15일에 리옹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그는 수많은 글을 썼고 또 남겼는데,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의 영성 서적을 비롯하여 성서 주석, 약 5백 편의 설교 등이 유명하다.


그는 1482년 4월 14일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체와 성합 그리고 추기경 모자가 그의 상징이다.



                                             사랑 안에서 자유롭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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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제자들이 하고 있음을

바리사이가 주님께 꼬집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안식일에 해야 되는 일은 무엇일지도 생각게 됩니다.

   

왜냐면 저는 무엇을 하지 말라하지 않음과 같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얘기하듯 미워하지 말아야지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최고로 잘해봐야 미워하지 않는 정도지 사랑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쉽게 무관심해버리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요.

   

마찬가지로 안식일이 하지 말아야 할 그 수많은 것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목적이라면 아무 것 하지 않는 쪽으로만 점점 치달을 거고,

그리 되면 예수님 당시에 그 폐해를 볼 수 있듯이

결국 아무 것도 못하고, 옴짝달싹 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이건 다른 날이건

우리는 해야 할 것, 곧 사랑을 하면 되는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 곧 미움은 사랑을 하면 저절로 안 하게 되겠지요.

   

우리는 이렇게 사랑 안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사랑하지 않기에 우리는 부자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일어나 이 복음을 읽고 난 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오늘 복음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과 어디론가 가시는데 밀밭을 지납니다.

떠돌이생활을 하다보면 몇 끼씩 굶을 수도 있는데

아마 예수님과 제자들도 무척 허기져 밀 이삭을 끊어 먹습니다.

   

이런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작년 포르치운쿨라 행진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저희도 배가 고프고 불볕더위로 무척 지쳤습니다.

   

제가 출발할 때부터 서리를 해서 먹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가난한 집의 것이나 돈벌이로 하는 분들의 것은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서리를 해도 된다고 했지요.

   

그 이유는 프란치스칸 영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기에

남의 과일을 따 먹는다 해도 실은 하느님 것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입고 있는 옷도

더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의 것이라고 하며 주었고,

다른 사람의 포도도 죄의식 없이 따먹었습니다.

   

그러다 주인한테 붙잡혀 프란치스코는 많이 얻어맞았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그것이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얻어맞았지만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얻어맞고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잽싸게 도망친 덕에 얻어맞지 않은 동료와 가던 길을 마저 가며 농담합니다.

맛세오 형제는 잘 먹었네. 프란치스코는 잘 맞았네.”

 

프란치스코처럼 진정 가난하고,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 프란치스칸이라면

이 정도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오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비, 사랑이라고 하시잖아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강박적으로 매이지 말고,

해야 할 사랑 안에서 자유롭고,

자유롭게 사랑을 하는 주님과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