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8월11일 다해 연중 제19주간 목요일(아시시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 관상적 가난과 형제적 가난

dariaofs 2016. 8. 11. 06:10




1194~1253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글라라수도회 설립, 수녀.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귀족인 오프레두치오와 오르톨라나디 피우미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클라라(Clara)는 용모도 뛰어나서 12세 때 혼인을 서두르는 부모들의 강권을 물리쳤으며, 1212년 사순절 때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크게 감명을 받고 수도생활을 결심하였다.


그녀는 성지 주일에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서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아직 여자 수도원을 세우지 않았으므로, 바스티아 근방 성 바오로(Paulus)라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그녀가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들이 그녀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므로 끝까지 항거하다가, 산 안젤로 디판초로 옮겼는데 그 얼마 후에 15세 된 동생 아녜스까지 언니에게 와서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12명의 장정을 무장시켜 아녜스나마 데려오려고 하였지만, 클라라의 간절한 기도의 힘에 의해 끝내 아무도 데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산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을 모원으로 확정하였으며, 이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써줌으로써 가난한 부인회가 탄생된 것이다.


 이 회가 잉글랜드(England)에서는 작은 수녀회(Minoresses)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클라라회이다.


클라라는 1215년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로부터 ‘가난의 특권’을 얻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애긍에 의존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그 후 클라라는 이 특권을 유지하는데 늘 고심하였고, 교황이나 다른 성직자들이 수녀들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반대해서 많은 곤경을 겪었다.


클라라회의 수녀들은 당시 어느 수도회보다도 엄격하고 가난하였다. 그러나 클라라를 비롯한 동료들은 높은 수준의 관상가들이었으며, ‘복음적 완덕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녀는 약 40년 동안 공동체를 지도하였지만 늘 건강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뜻이 담긴 클라라회의 회칙은 그녀가 운명하기 이틀 전에야 겨우 승인을 받을 정도로 그 엄격성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클라라회는 급속도로 이탈리아 전역과 프랑스, 독일로 보급되었고 교황과 추기경 및 주교들의 자문 역할로써 떨친 그녀의 영향도 지대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기적으로 더욱 영광스럽게 되었는데, 1241년 그녀의 기도로 프레데릭 2세의 난폭한 군인들로부터 아시시를 구출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1253년 8월 11일에 아시시에서 운명하였는데, 2년 후에 곧바로 시성되었다. 클라라는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이고 문장은 성체 현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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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있어라.”

 

오늘 감사송은 클라라를 지극히 높은 가난의 길을 걸은 성녀로 칭송합니다.

주님께서는 복된 클라라를 지극히 높은 가난의 길을 걷게 하심으로써

세라핌 완덕의 정상에 올리셨나이다.”

 

그리고 클라라의 가난을 얘기할 때 매우 엄격한 가난으로 얘기하곤 합니다.

사실 클라라는 가난을 가장 엄격하게 산 성인 중의 하나이고

가난 면에서는 어쩌면 가난의 대명사요 클라라가

그의 가난을 따르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보다도 더 가난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클라라가 지극히 높은 가난을 살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엄격한 가난만을 살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엄격한 가난이지 지극히 높은 가난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클라라가 가난을 엄격하게 준수하였지만 기쁨이 없었다거나

엄격한 가난을 실천하였지만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지극히 높은 가난을 산 것이 아니고

그런 가난을 우리는 칭송하지도 따르려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클라라의 가난은 우선 관상적 가난이고,

그래서 지극히 높은 가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관상을 위한 가난이지 가난을 위한 가난은 아닙니다.

   

관상을 위한 가난일 때

우리는 무엇을 소유치 않는 게 아니라 사랑치 않는 것이며

그럴 때 봉헌하는 가난이 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가난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면 소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애착하는 것이 문제이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러므로 지극히 높은 가난은 무엇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유 이상의 애착이나 만족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 되게 하고,

아무 것도 소유치 않을 뿐 아니라

아무 것도 애착치 않고 만족치 않으며 무엇에도 안주치 않음으로써

지극히 높은 가난은 훨훨 하느님께로 오르게 하고 하느님께 머물게 합니다.

   

다음으로 지극히 높은 가난은 형제적 가난입니다.

가난하기만 하고 형제애가 없으면 낮은 가난이고,

가난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면 그 가난은 더 낮은 가난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을 보면

재산 때문에 형제끼리 싸우고 갈라서기도 하지만

가난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져 싸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클라라의 공동체를 보면 지극히 높은 가난을 살았기에

가난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진 것이 아니라

가난 덕분에 영혼이 풍요로워져 서로 더욱 사랑하게 됐습니다.

   

클라라는 하느님 때문에 가난한 자매들을 가난 때문에 더욱 사랑하고,

특히 가난 때문에 병약한 자매들을 더욱 사랑으로 돌봤습니다.

이것은 마치 콩 한쪽도 반으로 나눠먹는 사랑이고 그래서 애틋합니다,

   

저는 요즘 같은 더위에 클라라 공동체를 생각해봅니다.

좁은 공간, 에어 콘은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수도원에 자매들은 많아서

마치 좁은 감방에 열기 때문에 옆 사람이 원수가 되는 그런 일이

클라라의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클라라와 공동체 자매들은 그러지 않았지요.

그것은 클라라와 자매들이 지극히 높은 가난을 살았기 때문이고

이것이 바로 관상적이고 형제적인 가난을 살았다는 증거일 겁니다.

   

오늘, 에어 콘이 없어서 더위에 짜증이 나고 옆 사람이 없었으면 할 때에도

더위야,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하며 더위도 관상하고 하느님도 관상합시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