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0월 18일 다해 연중 제29주간 화요일(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dariaofs 2016. 10. 18. 07:07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인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는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였고(골로 4,14),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Paulus)의 제2차 전교여행 때 그를 수행하였으며,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였고, 바오로의 제3차 전교여행 때에도 수행한 듯 보인다.


또한 그는 바오로가 수감 중이던 61-63년까지 로마(Roma)에 있었으며, 재차 투옥되었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 66년 바오로의 서거 때부터 그는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믿을만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예루살렘에 계시던 마리아를 뵈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 한다.


그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기술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도 70-90년 사이에 그리스에서 기록한 듯 하며, 사도행전은 35년부터 63년까지의 교회 성장기를 서술한 것이다.


그는 84세의 일기로 보에시아에서 운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화가와 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문장은 소이다.


강론   :   (루카 10,1-9)


<쓸데없는 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4).”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과 거의 같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은,
선교활동을 할 때에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수단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선교활동은 돈의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 가운데에는 없었던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열두 제자와는 달리
일흔두 제자는 사회생활과 세속적인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가르침을 특별히 더 추가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선교활동을 할 때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전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아는 사람, 친한 사람에게는 먼저 전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모르는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하라는 말인가?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아는 척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당시에 그 지역에서는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모든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묻고, 여러 가지 소식을 주고받았습니다.
짧게 인사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그 지역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쓸데없는 일로 시간낭비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고 급한 일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안부 인사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전해 주는 것이 순서입니다.
가족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이웃과 친구와 친척에게...
또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여러 가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 말씀에서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세속적인 친분과 인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뒤로 미룬다면,
그것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선교활동을 할 때의 지침이지만,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 생활입니다.
(다른 일에 한눈팔면 안 되는 생활입니다.)


예를 들면, 여가 시간에 하는 취미 활동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건전한 취미 활동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더욱 권장할 일입니다.
그러나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일 미사 참례는 의무니까 억지로 하고,
남은 시간은 모두 취미 활동에 쏟아 붓는다면,
또는 취미 활동이 주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기도생활은 취미 생활을 하고 남은 약간의 시간에만 한다면,
그것은 신앙인이 주일을 지키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취미생활 외에도 세속에서의 여러 가지 활동들도 모두
자기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를 잘 판단해서 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신앙인으로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들 안에 자리 잡은 무지와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정신이 어두워져 있고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감각이 없어진 그들은 자신을 방탕에 내맡겨
온갖 더러운 일을 탐욕스럽게 해 댑니다(에페 4,17-19).”


세상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신앙인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든지, 그냥 취미로 하는 일이든지 간에.)
신앙인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 라는 말에는 ‘성별(聖別)되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다르게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지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또 그것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라면,
그 즐거움은 일시적이고 허무한 쾌락일 뿐입니다.
그런 즐거움에 빠져 있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나면 허무감만 느끼게 될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전력을 다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무슨 죄를 실제로 짓는 것은 아니더라도,
인생을 낭비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