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4.자비송(마태 9,27): 자비는 믿음이 있어야 실현된다.

dariaofs 2016. 11. 1. 06:00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eleison hemas, 마태 9,27) 눈먼 사람 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외쳤던 자비에 대한 호소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1-17)와 동방 박사들의 방문(2,1-12)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눈먼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보지 못하는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에 관하여 듣고 믿음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눈먼 사람들은 믿었기 때문에 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보았기 때문에 믿지 않았다”라는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의 해석은 예수님에 대해서 당시의 유대인들보다 더 많이 배웠고 전례에서 그분의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면서도 열정이 약한 우리의 신앙에 대한 질책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주님께 청하는 과정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고백과 자비에 대한 청원으로 이루어져있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하는 성호경과 축복의 인사 교환 이후에 참회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눈먼 사람 둘이 청했던 자비를 우리도 따라서 청하는 자비송(Kyrie)를 외거나 노래한다.


역사적으로 ‘자비송’은 원래 로마나 그리스 사회에서 신도들이나 군중들이 신이나 황제 또는 개선 장군을 환영하며 맞이하는 군중의 환호였었다.


태양신을 섬기던 고대 동방인들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향하여 허리를 굽혀 절하면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외치며 절하곤 하였다.


성경에서 볼 수 있고,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장하던 헬레니즘 문화에서도 사용되었던 자비송은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서서히 미사의 구성요소로 자리잡는다.


4세기 말경에 기록된 「에테리아 여행기」를 보면 예루살렘에서 바치던 “저녁기도” 중에 부제가 기도 지향을 말하면 소년들이 매번 “기리에 엘레이손”하고 환호했다는 언급과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안티오키아와 다른 동방 교회에서도 미사나 성무일도 중에 간청기도와 ‘기리에’로 구성된 호칭기도 형식의 기도를 바쳤다는 사실로 5세기에 동방에서 먼저 전례 환호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서방교회는 5세기 말엽이나 6세기 초엽에 동방에서 순례자들을 통해 ‘기리에’를 받아드리여 성무일도와 미사 때에 불렀다고 한다.


젤라시오 교황(492-496)때는 ‘자비송’이 기도 지향을 말하고 ‘기리에’로 응답하는 형태로 사용되었다가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 때에 이르러서 ‘기리에’‘그리스떼’가 지향이나 간청에 대한 응답이 아닌 순수한 독립 환호로 현재의 위치에 정착되었다.


그리고 8세기 이전에는 반복 횟수가 기리에 세 번, 그리스떼 세번, 그리고 다시 기리에 세 번 등으로 아홉 번이었다. 아마도 세 번은 신적 거룩함을, 아홉 번은 구품천사를 상징한 것 같다.


그런데 중세의 저명한 전례해설가였던 메츠의 아말라(+850년경)는 첫번째 기리에는 성부께, 두번째 그리스떼는 성령께 올리는 환호라는 그릇된 해석을 하여 오랜 동안 그렇게 인식되기도 하였다.


‘기리에’그리스도를 의미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약성서나 초세기의 문헌을 보면 대부분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고 있다.


예를 들면 사도교회의 유명한 그리스도 찬미가인 필립 2,11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라고 한다.


 루카 2,11에서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릴 때에도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라고 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는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요한 21,7)라고 말했다.


미사의 기도문은 일반적으로 성부를 향하지만 ‘자비송’과 축성 후의 ‘기념 환호’,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양’ 등은 모두 그리스도께 바치는 기도이다.


현행, 미사경본 총지침 52항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자비를 청하는 자비송을 두 번씩 부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적 특성이나 음악적 형식 또는 환경을 참작하여 여러번 반복하거나 짤막한 말을 덧붙일 수도 있으며, 가능하면 공동체 전체, 곧 교우들과 성가대, 또는 교우들과 선창자가 교대로 노래로 바치기를 권한다.


자비송참회 예식에 속한다. 참회 예식은 우리가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청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가 거행하려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놀라운 신비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동참하려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위해 우리는 모든 전례의 시작부터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세상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행동 때문에 죄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례를 거행하기 전에, 알면서도 범했던 많은 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자책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의 현존 앞에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행위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죄로 인해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구원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자비를 청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물을 기쁘게 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와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루카 18,13)를 자비송과 연결하여 묵상을 하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끌어줄 것이다.


한마디로 자비송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환호이자, 그분이 보여주신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다. 그런 면에서 자비송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설은 ‘대영광송’(Gloria)이라 할 수 있다.



윤종식 신부 작성
1995년 서품, 1995년-1997년 불광동본당 보좌, 1998년1월-2008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전공, 2008년 9월-2010년 8월 화정동본당 공동사목 및 대표주임, 2010년9월-2012년 2월 정발산본당 주임. 2012년 3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