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특 집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구상 시인 (하)

dariaofs 2016. 12. 26. 04:00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
유언 남기고 영원의 동산으로




■ 수염을 기르고 재속(在俗) 수행의 길에 오르다

구상은 1970년대 초 하와이대학에 객원교수로 초빙을 받아 3년간 한국전승문화 강의를 하고 돌아온다.


이후 그는 노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수염을 기르고 세속적 권세의 접근을 사절함은 물론 대의명분을 내건 현실참여에의 부름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별 쓸모없는 ‘뒷방 영감’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존재의 내면에 더욱 눈을 돌리고자 생성과 소멸이 잘 드러나지 않는 강을 테마로 연작시를 쓰기 시작한다.


성 크리스토퍼(그리스어로 크리스토포루스)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그 연작시를 일본식 발음대로 ‘그리스도 폴의 江’이라 이름 붙이고 종신 보금자리가 된 여의도 아파트에서 조석으로 마주하는 한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는다.

그런 한편 인생 회귀의 연령에 다가갈수록 더욱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 자신의 신심을 가다듬고자 그는 복음 묵상집 「나자렛 예수」를 집필하고, 신앙 시 55편을 엮은 「말씀의 실상」을 펴내기에 이른다.


내가 자식으로서 기억하는 구상 시인은 하루도 취침전 기도를 빼먹지 않고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위해 일일이 거명하며 바치는 기도문들과 완덕을 추구하는 동서고금의 잠언들을 빼곡히 적은 기도첩을 만들어 곁에 두고 사는, 흔치 않은 ‘모범’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부단히 원융회통(圓融會通)과 무위(無爲)의 섭리를 사유하며 세계종교사상의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우주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 구도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백 편을 쓰길 원했지만 병석에 누움으로써 예순다섯 편에 그치고 만 강 연작시 마지막 편을 그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강이 흐른다……. // 또 어느 날 있을 증화(蒸化)야 아랑곳없이 / 무아(無我)의 갈원(渴願)에 체읍(涕泣)하면서 / 염화(拈華)의 미소를 지으면서 // 강이 흐른다……. // 강! 너 허무(虛無)의 실유(實有)여. - ‘그리스도 폴의 江·65’ 중에서

 구상의 그러한 불이(不二) 사상은 오늘과 영원이 따로 있지 않고 함께한다는 ‘현존(現存)’ 의식과 맥이 닿아 있어 그의 필생의 주제인 ‘영원과 오늘’이 시적 형상화의 구도를 갖추기 시작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연작시선집 「오늘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오늘」이 출간되고 이것이 프랑스에서 번역, 출판되어 세계 명시선의 하나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 외에도 스웨덴어,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노벨상 본심 후보로까지 오르기도 한다.


이 ‘오늘’ 시리즈에서 그는 관념적 어휘를 지양하고 쉽고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여 이전과 달리 대중 독자와의 소통을 열게 된다.



1994년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으로 한강 여의나루터에 세운 구상 시비(詩碑) 제막식. 왼쪽부터 박삼중 스님, 구상 시인, 류달영 박사, 김수환 추기경.(구자명씨 제공)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 ‘오늘’ 중에서

 내게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문학인으로서 아버지 구상 시인에 대해 늘 의아하면서도 경이롭게 여겨졌던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언어의 기교에 치우쳐 말의 영혼(言靈)을 잃어버리는 문학을 지극히 경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의 언어가 생명을 지니고 힘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말을 지탱하는 내면적 진실, 즉 그 말의 개념이 지니는 등가량(等價量)의 추구와 체험이 요구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평단 일각에서 말하듯 메타포도, 운율도 갖추지 못한 듯 보이는 무기교의 시들을 상당량 써내면서도 김윤식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면 ‘조금도 당황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현대문명 속에서의 시의 기능」이란 에세이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시는 말에다 생명을 부어 소생시키고 그 기능을 확대,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사회의 유대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힘차게 하는 것이다.’


이 생각은 그가 시를 쓰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고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란 믿음을 갖게 한 연원인 듯하다.


그래서 그는 유언을 그렇게 남겼던가 보다. “세상에는 시가 필요해요.” 2004년 어느 봄날,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했던 시인 구상은 자신이 몸담았던 이 불완전하고 유한한 세상에 대해 마지막 시집 「인류의 맹점에서」를 펴내어 믿음의 시들로 희망을 제시하고 ‘영원의 동산’으로 떠났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오뇌와 고통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허망의 잔을
피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이 욕망과 고통과 허망 속에
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
감추어져 있음을.
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
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나는 또한 믿고 있다.
-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전문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집필해 주신 분들과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구자명(임마쿨라타·소설가)
구자명 작가는 (故) 구상 시인의 딸로, 1957년 경상북도 왜관에서 태어나 미국 하와이 주립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뿔」로 등단한 후 꾸준히 창작 활동을 펼쳐온 한국 문단의 중견 작가다. 한국가톨릭문학상과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미니픽션작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