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월 26일 가해 연중 제3주간 목요일(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7. 1. 26. 00:26




리카이니아(Lycaenia)의 리스트라(Lystra) 태생인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티모테오, 디모테오)는 그리스인 아버지와 유대교에서 개종한 에우니케(Eunice)의 아들이다.


그는 성 바오로(Paulus)가 리스트라에서 설교할 때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성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른팔 역할을 하였다(사도 16,1-4). 그는 혹시 말썽이 날까봐 할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제2차 전교 여행을 수행하였다.


바오로가 유대인의 적개심 때문에 베레아(Berea)를 몰래 빠져나갈 때, 성 티모테우스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테살로니카(Thessalonica)로 파견되어 그곳의 상황을 보고하고,


또 박해 중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였다. 58년 성 티모테우스와 에라스투스(Erastus)는 마케도니아(Macedonia)로 파견되었으며, 그 후 코린토스(Corinthos)로 가서 바오로의 가르침을 명심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바오로가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투옥되고 또 로마(Roma)로 이감되었을 때, 성 티모테우스도 같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 후 그는 에페수스로 가서 그곳의 초대주교로 봉직하였다.


그는 디아나(Diana)를 공경하는 카타고리아의 이교 축제를 공식적으로 반대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티모테우스에게 보낸 바오로의 두 편지는 65년경에 마케도니아에서 썼을 것이다.

 


성 티투스(또는 티토, 디도)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의해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그를 코린토스(Corinthos)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그 후 그는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크레타(Creta)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그는 달마티아(Dalmatia)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 듯하다. 그는 법률가 제나가 쓴 “티투스행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성 바오로로부터 받은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영적인 권고를 비롯하여 착한 목자가 지녀야할 자질 및 크레타 신자들에게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강론   :   루카 10,1-9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루카 10,4) 

                
                                                    The mission of the seventy-two


하느님께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함  
 

티모테오와 티토는 바오로 사도를 도와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사랑하는 아들”(2티모 1,2), “착실한 아들”(티토 1,4)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할 것”(2티모 1,8)을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여기서 일흔 둘을 파견하는 것은 모든 이민족들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음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복음선포 사명이 이제는 열두 제자만의 몫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파견하시면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3-4) 하십니다.


복음선포는 ‘이리 떼 가운데로’ 가는 것처럼 하느님 부재의 상황, 복음적 불안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이리 떼 가운데 가는데 아무런 방어 장치도 지니지 말고 가라시니 너무 가혹한 것 같기도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세상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 친히 함께 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도구와 방편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체의 소유와 애착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생계유지를 위한 것들을 비롯한 일체 것들과 걱정 근심, 불안과 염려와 같은 것들로 마음속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난 빈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실 때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10,4)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면 멈추어 긴 인사를 나누었지요.


그런 인간적 예의를 지키느라 평화를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일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했던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복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사랑을 품어야겠지요. 나를 비우고 내 안에 하느님을 모셔야 복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리 떼 가운데서 살아남아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를 선포하는 것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복음선포는 결코 단 한순간도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일이기에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고, 하느님 때문에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집중하고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불안정과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모든 애착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품는 행복한 가난의 순례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공동의 선을 위해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기꺼이 동참할 때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