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월 27일 가해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dariaofs 2017. 1. 27. 20:03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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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주님께서는 오늘 하느님 나라를 씨 뿌리는 것에 비유하시고,

씨 중에서도 겨자씨를 뿌리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런 돌발적인 묵상을 했습니다.

나는 어떤 씨를 뿌려왔고 지금 어떤 씨를 뿌리고 있나?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고 있는 건가?

   

오늘 주님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면

씨를 뿌리는 것도 중요하고,

뿌린 씨를 싹트게 하는 것도 중요하며,

마침내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씨를 뿌리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오늘 주님은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시고,

씨를 뿌리기만 하면 저절로 싹트고 자라 열매 맺는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믿기 힘들어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씨 뿌린 다음에 그것이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기까지

자기가 얼마나 애 써야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쌀농사가 아니라 자식농사만 해도 애를 나 놓기만 하면

얘가 저절로 크고 저절로 사람 노릇하는 것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절로>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씨는

저절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씨가 세상의 씨라면 <저절로>가 절대로 불가능하겠지만

하느님 나라의 씨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노자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하였지요.

여기서 무위無爲란 인위人爲가 없는 것이고,

자연自然이란 우리가 요즘 뜻하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러므로 무위자연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뭣을 하지 않으면

무엇이 스스로 그러하거나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 신앙적인 말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정말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고 자라고 열매 맺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할 것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다시 무위의 뜻,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뜻을 다시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무위란 자포자기적이거나 무책임하고 게으르게 아무 것 하지 않음인가?

   

무위란 자기본위 또는 자기중심으로 무엇을 하지 않음입니다.

무엇을 하되 자기가 없음입니다.

자기 이익,

자기 계획,

자기 뜻,

자기 고집,

자기 힘. 이런 것이 없이

하느님이 내가 되고 내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이 하느님의 뜻이 되어,

나의 힘은 빼고 하느님의 힘이 나의 힘이 되어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회심축일에 저는 하느님께 여쭙고 나는 뭘 하는지 자문했는데

여쭙고 뭘 하기도 해야겠지만 아예 내가 뭘 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하라 하시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그렇겠지요?

이 것을 이렇게 하려는데 이 것이 당신 뜻에 맞는지 여쭙는 것보다

당신 원하시는 것 하려 하는데 당신 뜻이 뭔지 여쭙는 게 차라리 낫겠지요?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