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섬마을에 주님 사랑 전한 ‘서해의 별’
최 신부 헌신적 모습 오롯이 담아
“복음 증거하는 삶 본받게 되길”
이날 미사에는 최 신부의 동료 사제들과 신자들이 참례해, 생전에 그가 선교사로서 펼친 뜻을 기리고 그 삶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추모위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메리놀외방선교회 사제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 책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하느님 아버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먹을거리, 전등, 상·하수도…. 모두 급한 일들입니다. 게다가 아픈 이들이 많아요. 병원이 없어요….”
섬에 발을 내디딘 순간, 최 신부가 맞닥뜨린 현실은 가난 그 자체였다. 오직 기도만이 그를 지탱시키는 힘이었다.
최분도 신부는 1962년 6월, 연평도본당 주임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연평도본당은 서해 낙도 22개 섬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었다.
깊은 고뇌 속에서 기도하던 최 신부는 다시 일어나 미국에 있는 동료 사제들과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연평도 구석구석 외딴 집까지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매일같이 찾아다녔다.
섬 주민들의 영육 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온종일 다니다 사제관으로 돌아올 때면 풀기 빠진 옷처럼 녹초가 됐지만, “형의 몫까지 해야 한다”는 다짐은 다시 그를 일어서게 하는 또 다른 힘이었다.
최분도 신부는 1959년 사제품을 받고, 그 해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다. 앞서 한국 사회활동가로 파견됐던 최 신부의 형은 1956년, 한강에서 급류에 휩쓸린 두 명의 소년을 구한 후 익사했다. 최 신부는 형이 못다 한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다.
‘한국과 한국인을 너무나 사랑한 사목자’, ‘섬마을 주민의 생명을 구하는 서해안의 슈바이처’, ‘가난한 섬마을의 문명화 개척을 추진하는 선각자’,
‘억압받는 이들이 권익을 보호하는 정의의 실천가’, ‘소외된 고아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어버이’…. 최분도 신부 이름 앞에는 늘 이런 수식어가 붙곤 했다.
그는 1964년엔 한국 최초의 해상 순회 진료선인 ‘바다의 별’을 띄웠다. 연평도와 덕적도에 전기선을 잇고 상하수도관을 들이고, 병원을 짓고, 유치원을 세웠다. 고아들의 입양과 교육, 영세민 자립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헌신했다.
그의 묵묵한 노력에 힘입어, 그가 사목하던 기간 중 연평도 600여 세대 중 500여 세대가 천주교에 입교했다. 덕적도민 1만여 명 중엔 7000여 명이 입교했다.
핍박받는 이들을 돌보고 민주화를 일구는 데에도 앞장섰다.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으로 잘 알려진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선거법 위반 사건 피해자들을 돌보는 것 또한 최 신부가 선택한 몫이었다.
특히 최 신부는 신설본당의 초대 주임을 맡아 새 성당을 짓는 데 쉼 없이 헌신했다. 그 결과, 인천교구 덕적도·송현동·부평3동·산곡3동 성당을 짓고 봉헌했다.
사목 현장에서 은퇴한 후 암 투병 중에도, 러시아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국인 신자들을 위한 성야고보 성당을 짓는 데 마지막 힘을 쏟아냈다.
「가거라! 내가 너를 보낸다」 에는 이러한 최 신부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책 제목은 최 신부의 사제서품 성구인 ‘가거라, 나는 너를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려고 한다’(사도행전 22,21)에서 따왔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발간사를 통해 “이 책이 그리스도인의 ‘증거하는 삶’을 사신 최 신부님을 기억하고, 많은 이들이 그 삶을 본받아 복음의 증거자들이 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독려했다.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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