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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 (28) 황성일(안셀모) ㈜동아인업 대표이사

dariaofs 2017. 2. 4. 13:06

맨주먹으로 시작한 타향살이. 반 백 년이 흐르면서 타향은 제2의 고향이 됐고, 사진식자공으로 업계에 첫발을 들인 젊은이는 지역 최대 인쇄업체 대표가 돼 이제 희수(喜壽)를 맞고 있다. 황성일(안셀모, 77) ㈜동아인업 대표의 삶과 신앙 이야기다. 



                                          ▲ 인쇄물을 살펴보는 황성일 대표이사.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로 16에 있는 ㈜동아인업. 외형은 허름해 보이지만 임직원 40여 명을 둔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인쇄사다. 인쇄만 하지 않는다.


도서출판 ‘지평(地平)’이라는 출판사와 부설기관 디자인개발연구소도 두고 있다. 기획에서 편집 출판 인쇄 제본까지 모든 공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설립자인 황성일 대표이사는 기부와 나눔 실천에 앞장서는 향토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15년 1억 원 이상 고액을 기부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됐다.


하지만 황 대표는 훨씬 이전부터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 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기부와 나눔은 그 자신도 모르게 삶의 기술이자 철학이 됐다.

 

가난 극복하고 나누고 베풀어


황 대표 고향은 대구 인근 경북 경산 자인면이다. 부산에 내려온 것은 20대 중반 때였다. 고향인 대구에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바람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로 작정했다.


막노동으로 전전하다가 잡은 직업이 사진식자였다. 타자기 형식으로 사식을 치는 식자공으로 출발했으나 서울을 오가면서 배운 끝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편집기를 도입, 1972년 ‘동아사진식자사’라는 식자회사를 차렸다. ㈜동아인업의 시작이었다.


“인쇄소의 하청작업을 맡아 하면서 쌓은 기술을 활용해 부산사진식자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사진학자학원을 개설해 제자들도 양성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과 본의 아니게 경쟁 관계가 자꾸 형성되더군요. 그래서 인쇄 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지요.”


유신 체제의 종말과 제5공화국으로 이어지는 1970년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부산 지역에는 민중 문학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고, 학창시절 정치학을 전공했던 황 대표는 자연스럽게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출판사를 운영했다.


황 대표는 민중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도 오르게 됐다.


“이렇게 출판사를 운영해서는 빵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또한 인쇄 쪽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주력을 인쇄업으로 돌렸지만 시장은 만만찮았다. 관공서 쪽의 수주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들어오지도 않았다. 유통 업계로 눈을 돌렸다.


유통업계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거리가 많았고 물량도 컸다. 수익이 생기면 재투자해 시설을 확충했다. 회사는 점점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제게는 부산이 혈연, 학연, 지연 등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입니다. 사진식자공에서 출발해 자영업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에 도움을 받을 데가 전혀 없었습니다.


대출을 받으려면 보증인을 세워야 했는데, 연고가 없으니 보증인을 세울 수가 없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려면 가진 것을 먼저 나누고 베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황 대표의 나눔은 작은 데서 출발했다. 책을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종잇값만 받고 책을 만들어 주고, 인쇄 홍보물이 필요한 곳에는 실비만 받거나 나중에 비용을 탕감해 주는 식으로 기부를 실천했다.


 이런 식으로 부산 소년의 집을 후원하기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된다.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관련 인쇄 홍보물 지원은 도맡아 하고 있다.



                                                                        ▲ 동인직업재활센터 직원들과 황 대표이사.


사회복지기금 출연, 장애인에게 일자리 제공


황 대표는 2010년에는 10억 원을 출연, 사회복지법인 동인복지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동인직업재활센터를 운영한다.


재활센터에는 현재 약 40명의 장애인이 정규 직원 4명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쇼핑백, 현수막, 인쇄물 등을 생산, 납품한다. 황 대표는 이사장 직함을 갖고 있지만 재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일감을 주선하는 데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살기 위해서 시작한 기부와 나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황 대표는 기부와 나눔의 의미를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됐다. 한 마디로 “나눔은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대표는 “행복하고 싶으면 나눔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황 대표가 신앙에 귀의하게 된 것은 1980년이었다. 먼저 신자가 되신 어머니의 권유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괴정본당 사목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부산교구 평협 부회장과 부산 가톨릭경제인회 회장으로도 봉사했다.


현재 본당은 사하본당이지만 레지오 마리애 활동은 괴정본당에서 하고 있다. 쁘레시디움(주님의 성전) 주회를 특이하게도 수요일 새벽 6시 30분에 한다.


 880차를 지냈으니 벌써 17년째 되는 셈이다. 황 대표는 “새벽 주회를 하면 불참 핑계를 댈 거리가 없다”면서 새벽 주회 예찬론(?)을 편다.


20년 이상 아침에 출근하면 매일 사무실 복도와 계단을 청소하다가 직원들의 거듭된 만류에 최근 들어 청소를 중단하고 미화 직원을 채용했다는 황 대표는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워라’는 잠언의 말씀(6,6)을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꼽는다.

 

40년 된 목요학술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향토기업사랑 부산시민연합 상임대표, 재부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 부산시민센터이사 등으로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활발히 봉사하고 있는 황 대표는 사업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십시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정도를 걸으십시오.”


이창훈 기자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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