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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세계] 93. 팔레스티나-2 - 신은근 신부

dariaofs 2017. 2. 8. 04:30

팔레스티나 기후는 변화가 심하다.


북쪽은 온대성 기후로 분류되지만 사해가 있는 남쪽은 열대성 식물이 자란다.


그런 까닭에 통상 두계절로 나뉜다. 긴 여름과 겨울이다. 봄, 가을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일교차는 심해한 낮과 한밤의 기온 차가 40℃까지 갈 때도 있다.


수난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대사제 관저로 잡혀 가신다.


궁금해진 베드로도 뒤따라갔는데 사람들이 안뜰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루카22,55).


4월인데도 추웠던 것이다. 겨울엔 차고 건조한 동풍이 헤르몬산에서 갈릴래아 쪽으로 분다.


가끔은 회오리바람으로 바뀌어 거센 풍랑이 되기도 한다(마태 8,23).


일 년의 절반은 전혀 비가 오지 않는 건기다. 겨울에만 비가 내린다.


우기雨期는 10월부터 시작되며 4월 초에 끝난다. 가끔은 폭우가 되기도 한다.


기초가 부실한 집은 떠내려갈 만큼 순식간에 홍수를 이루기도 한다(마태 7,27).


로마인이 들어오기 전에는 가나안이라 불리었다. 이곳을 점령한 이스라엘도 그렇게 불렀다.


이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가 차례로 정복했지만 공적인 지명은 늘 가나안이었다.


로마는 700년 이상 이곳을 다스렸다. 전성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동로마 시대였다.


황제의 모친 헬레나 황후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찾아냈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이후 팔레스티나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로 바뀌었고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황제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원이 넘쳐났고 인구도 급증했던 것이다.


하지만 7세기 초에는 회교도가 장악한다.
636년에 일어난 야르무크Yarmouk 전투의 패배로 동로마는 손을 뗐던 것이다.


이후 유다인은 팔레스티나에 들어가지 못했다.


11세기가 되자 유럽인의 성지순례가 시작되었고 성지를 되찾자는 십자군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한때 십자군은 성공을 거두어 팔레스티나에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며 건재했으나 13세기 말에 사라지고 만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유다인 지도자 헤르츨Herzl은 시오니즘을 주창한다.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자는 운동이었다.


이후 유엔에서는 팔레스티나에 아랍인 국가와 유다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 자로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했다.


하지만 아랍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스라엘 지역을 침범했다. 중동전쟁의 시작이다.


성경은 왜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명 26,9)이라 했을까?


현실에는 그런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시일 것이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