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의 후작 페란테(Ferrante Gonzaga)와 마르타 타나 산테나(Marta Tana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2년 후인 1579년에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브레시아(Brescia) 지방 만토바(Mantova)로 옮겼다.
1581년 알로이시우스의 가족은 마드리드(Madrid)로 갔고,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알로이시우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일 로마(Roma)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로마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들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도시 전체에는 흑사병이 퍼졌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던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이 병에 전염되어 6월 21일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시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하였던 알로이시우스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 후 3년 후 알로이시우스 성인은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강론 : (마태 6,1-6.16-18)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1-2).”
“사람들에게 보이려고”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는 뜻이 같은 말입니다.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도
뜻이 같은 말입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정말로(진심으로, 사심 없이) 의로운 일을 한 다음에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고 기뻐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칭찬은 생각하지도 않고(바라지도 않고),
‘사람들의 칭찬만’ 바라면서 의로운 척 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위선은 사람들을 속이는 죄입니다.)
그런데 위선자들도 실제로 ‘의로운 일’과 ‘자선’을 행하긴 합니다.
그 일 자체가 의로운 일이고, 자선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의로운 척 하면서 의로운 일을 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척 하면서 자선을 행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정을(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의로움 없이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 없이 자선을 행하는 사람은 ‘사랑 실천을 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른다는 말은,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도 자기가 자선을 베푼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줄 때,
자기의 행동이 자선이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않고, 그저 ‘가엾은 마음’ 때문에,
또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2,39).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게 되는 일이고,
그것을 선행이나 사랑 실천이나 자선이라고 의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여기서 ‘물 한 잔’은 아주 사소한 도움을 뜻하는데,
물을 준 사람은 그 일이 너무 사소한 일이어서
자기가 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잊지 않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과 선행을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5-6).”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위선자들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척’이고, 연기입니다.
여기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에 기도하라는 말씀은,
실제로 숨어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는 척 하지 말고,
기도할 때에는 항상 하느님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숨어 계신 네 아버지” 라는 말은,
“하느님은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관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여기서 ‘마음을 모아’ 라는 말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척 하지 말고,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음으로 함께 하면서,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6-18).”
위선자들도 단식할 때에는 실제로 밥을 굶긴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자기의 신심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단식은 ‘헛고생’일 뿐입니다.
여기서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라는 말씀과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라는 말씀은,
“단식을 하면서도 안 하는 척 하여라.” 라는 뜻이 아니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에 관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 자신의 회개를 위해서,
또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단식을 합니다.
(만일에 신심을 자랑하려고 단식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일만 될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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