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6월 22일 가해 연중 제11주간 목요일(성 토마스모어 순교자)

dariaofs 2017. 6. 22. 05:46

 

 

법률학자이자 판사이던 요한 모어(Joannes More)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 모어는 12세 때에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요한 모턴의 조수생활을 하다가 옥스퍼드로 가서 링컨 법학원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1501년 법조계에 진출했다.

 

1504년에 그는 영국 의회에 진출했으며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고 1505년에 제인 콜트(Jane Colt)와 결혼하였다.

그들의 집은 영국의 문예부흥 및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 이유는 당대의 석학들과 지성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기지는 만인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영국 인본주의자들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석학이었다. 그는 시, 역사를 비롯하여 프로테스탄트를 반대하는 논문, 신심 서적과 기도문 등을 저술했고 고전 번역 작업도 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유토피아”(1515-1516년)는 이성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국가상을 묘사한 것으로 세계의 고전이 되었다. 또 “루터를 배격하는 헨리의 변명”(1523년)은 그가 가르쳤던 헨리 8세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담긴 서적이다.

1510년 그는 런던의 주 장관대리가 되었고, 1511년에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 과부이던 엘리스 미들턴(Alice Middleton)과 재혼하였다.

 

헨리가 그의 형 아서(Arthur)의 사망으로 왕으로 등극하면서부터 그는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의 외교사절로 활약했고, 1517년에는 추밀원에 진출했으며, 1521년에는 기사작위를 받았다.

 

또한 그는 1523년에 하원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529년에는 월시(Walsh) 추기경 후임으로 재상이 되었다. 모어는 이때 왕의 이혼에 대하여 강력한 어조로 반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상으로 기용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헨리 8세 왕의 이혼 문제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왕의 혼란을 가중시킴과 아울러 분노케 하다가, 헨리 8세가 카타리나(Catharina of Aragun) 왕비와의 이혼 허가를 교황청에 제출하는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을 때 국왕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또 교회를 반격하는 일련의 서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후 모어는 재상직을 사임하고, 1532년에 첼시(Chelsea)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또한 그는 헨리 8세가 카타리나의 시녀였던 앤 불린(Anne Boleyn)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에게 후계 지위를 양도한다는 소위 왕위 계승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534년에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고, 15개월 동안 옥중 생활을 하는 중에도 영국 교회에 대한 왕의 수장령에 서명할 것을 요청하는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에게 침묵권을 행사하며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 일로부터 꼭 5일 째 되는 날인 7월 6일, 마침내 그는 참수형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국왕의 충실한 종이 될 수 있으나 먼저 하느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던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193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고, 법률가의 수호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마태 6.7-15)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아시다시피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의 주님의 기도가 루카복음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주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다음

용서 부분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에서는 나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하니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사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는데 비해

마태오복음에서는 다른 이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허물의 용서와 죄의 용서의 차이가 있는 셈인데

이것이 표현의 문제일 뿐 큰 차이가 아닌지 모르지만

아무튼 저는 처음으로 이 차이점을 생각게 되었고

그것은 어제 어떤 수녀님과의 대화 때문이었습니다.

 
수녀님의 말씀 중에 용서를 한 줄 알았는데 다시 어떤 상황이 되면

용서했다고 생각한 것이 다시 올라 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가 된 줄 알았는데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얘기를 더 나누다보니 큰 죄에 대한 용서가 아니고

그야 말로 작은 허물에 대한 용서를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이때 저는 처음으로 큰 죄 또는 죽을죄에 대한 용서만

제가 용서로 생각해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수녀님은 이렇게 작은 허물도 용서하려고 하시는데

저는 큰 죄만 용서하려고 했기 때문에 작은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작은 허물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쌓여

저와 이웃과의 관계가 맑고 밝은 관계가 되지 못했음도 깨달았습니다.

 
이는 마치 유리창이 흙탕물이나 새까만 물감으로 더렵혀지지 않았어도

작은 먼지가 많이 쌓이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창에 표시가 나게 더러운 것이 묻으면 즉시 닦아내지만

작은 먼지는 잘 보이지도 않고 밖을 보는 데 큰 문제도 없기에

닦아내려고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죄와 허물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만 용서하고, 저와 같이 큰 죄만 용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작은 죄와 작은 허물에 대한 작은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것도 우리와 이웃의 관계를 막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막습니다.

 
아무튼 저는 용서를 생각하면 퍼뜩 떠오른 것이 원수에 대한 용서였고

그래서 며칠 전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에 대해 강론을 하면서

원수란 나를 불행케 한 존재이기에

내가 행복해야 용서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나를 불행케 한 원수는 내가 그로 인해 불행한 한,

그래서 그를 용서 못하는 한 그를 붙잡고 끝까지 씨름을 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씨름을 하여도 용서에 실패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져 야곱이 하느님과 밤새도록 싸워 이기듯

마침내 용서를 하게 되고 하느님과 만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수도생활을 하고 영성생활을 깊이 하는 사람이라면

작은 용서라고 하여 가볍게 보고 미루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작은 용서에 소홀히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해

더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