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7월 14일 가해 연중 제14주간 금요일(성 가밀로 데 렐리스 사제)

dariaofs 2017. 7. 14. 05:47

 

 

이탈리아 복치아니코에서 출생한 성 카밀루스(또는 가밀로)는 군인으로서 터키인들을 대항한 베네치아(Venezia)를 위하여 전투에 참가하였고, 도박에 빠졌으며, 1574년경에는 무일푼의 신세가 되어 나폴리(Napoli)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는 몸이 건장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1575년 우연히 설교를 듣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 두 번씩이나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했으나 일생동안 그를 괴롭힌 다리병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정력을 쏟았으며, 로마(Roma)의 산 자코모 병원에 자원으로 봉사하다가 곧 그 병원의 회계를 맡았다.

이러한 경험은 병원의 놀라운 상황과 제 문제점들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이던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의 권고를 받아들여 158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이미 사제와 평수사들로 회를 구성하였던 병자들의 봉사자회(The Camellians)를 세웠다.

그들은 로마의 주요 병원에서 사목하다가 1585년에는 자신들의 병원을 세웠으며, 특히 로마 항의 배들을 통하여 전염되는 흑사병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치료하였다.

 

그는 항상 창문을 열어 놓고, 적당한 음식물을 먹게 하고, 전염병일 경우는 격리하는 방법을 그는 활용하였고, 그의 사제들은 항상 숨을 거두는 환자들 곁에 있었으며, 임종자들의 장례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이게 하여 세인들의 칭송이 높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1607년에 자신의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늘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하다가 제노바(Genova)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746년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또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천주의 성 요한(Joannes, 3월 8일)과 함께 모든 병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로부터는 모든 간호사와 간호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마태 10.16-23)

 

 

어제와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이 제게는 일반적으로 들리지 않고

제게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1주일 후면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시작하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이 말씀은 저와 행진단에게 행진의 지침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서로 엇갈리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다른 지침을 주시는 것처럼 들리기고 합니다.

왜냐면 오늘 말씀 중에서 사람들한테 가라고 하시며 피하라고 하시고,

조심하라고 하시며 동시에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말씀들이 모순이 아니라면 이런 말씀이 되는 겁니까?

사람들한테 가되 위험은 피하고

조심은 하되 걱정이 지나치지는 않게 하라!

 
맞습니다. 사람들한테 가되 쓸데없는 위험은 피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뒤집어 얘기하면 쓸데없는 위험을 피하라는 거지

위험하니까 또는 위험을 피해 아예 가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견뎌야 할 박해가 있고

피해야 할 박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과거 얘기가 있습니다.

수도원을 나가 밖에 살 때 여호와의 증인 아가씨가 저를 개종시키려 했지요.

싫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아서 제가 하느님은 선하시고 사랑이신데

왜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지 답을 달라고 하니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원장을 할 때 역시 여호와의 증인인 나이든 자매가 와서

굳이 수도원 원장과 만나 신앙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감히 수도원에 찾아와 그것도 원장을 개종시키겠다는 용기도 대단하였지만

토론에 져도 끝까지 괴롭히는 그 막무가내가 대단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대상이 되는 사람이 싫다며 그래서 박해를 하면

그때는 어제 주님께서 발의 먼지를 털고 떠나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고집 부리지 말고 떠나야 하고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복음 선포를 사람들이 원하는데 가족의 박해가 있던지

경찰이나 권력자의 박해가 있다면 그때는 우리가 복음 선포를 위해

온갖 박해를 견뎌야한다고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음은 조심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조심을 하라는 말은 모기를 조심하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숲에 가면 모기가 많은데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실은 모기를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는 본래 무는 것이니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나의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복음을 선포하러 가는 것도 마치 양이 이리떼 가운데 가는 것과 같으니

이리를 조심하는 것은 이리가 물어뜯을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이지요.

쓸데없이 책잡힐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독재시대에는 우리나라도 그랬고 지금도 제가 북한이나 중국에 가면

제가 어떻게 하나 공안(경찰)이 살피고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데

복음 선포 외에 술에 취한다든지 우월의식이 드러나는 말을 한다든지 하면

복음은 선포하기도 전에 붙잡혀 가거나 물어뜯길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옳게 선포하다가 붙잡히게 되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하느님께서 다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할 때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집트로 가는 야곱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포르치운쿨라 행진이든 그 어떤 복음 선포의 행위든 그게 주님의 일이라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니 걱정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걱정을 한다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고

아무리 여럿이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느님 없이 하기 때문일 겁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