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dariaofs 2017. 9. 17. 05:00

비움과 순종, 부활의 영광 향해 가는 길

 

 

                         ▲ 그리스 필리피 성지를 순례하고 있는 순례객들.가톨릭평화신문 DB


필리피는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여행에서 복음이 전해진 곳입니다. 그리고 소아시아가 아닌 유럽 지역에서 선교한 첫 번째 도시이기도 합니다.(필리 4,15) 그래서인지 필리피 공동체와 바오로 사도의 관계는 다른 공동체와 조금 달랐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를 위해 스스로 일하며 다른 공동체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지만 필리피 공동체의 도움은 물리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필리 4,16)

 

이런 모습에서 바오로 사도가 가졌던 필리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거짓 선교사에 대해 경고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리피서)을 읽다 보면 조금 특이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필리피서 3장 1절과 2절 사이의 매끄럽지 못한 맥락입니다. 필리피서 3장 1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같은 내용을 적어 보낸다 해서 나에게는 성가실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여러분에게는 안전한 것이 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오로 사도는 마치 편지의 마지막처럼 “끝으로 나의 형제 여러분”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또 필리피서 3장 2절은 조금 다른 어조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거짓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상당히 강한 어투로 거짓 선교사들에 대해 경고하는 이 부분은 이전의 내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런 특징에서 사람들은 필리피서가 하나의 편지가 아니라 두 개의 편지가 하나로 합쳐졌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은 두 개의 편지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필리피서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상으로 필리피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2장 5절부터 11절에 나오는 ‘찬미가’입니다. 이 찬미가는 그리스도의 기원과 사람이 되어 오신 사건,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주제로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당대의 영웅이나 신화 등에 많이 사용되던 시적인 형태에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담아 전합니다. 이 찬미가의 내용을 읽으며 마치 바오로 사도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6-7)

 

이미 잘 알려진 이 찬미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곧 그의 드라마를 자기 비움, 순종 그리고 영광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육화를 바오로 사도는 ‘비움’으로 요약합니다.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 “여느 사람”처럼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자신을 낮춘 ‘순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수난당하고 십자가 죽음에 이른 사건은 바오로 사도의 눈에 철저하게 하느님께 순명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시어 영광을 주셨습니다. 비움과 순종 그리고 그것과 대조되는 영광은 바오로 사도가 이해했던 예수님 사건의 다른 표현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구원하러 오다

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대조적인 표현은 ‘하느님의 모습’과 ‘종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습’이 겉모양을 뜻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모습이란 용어에서 인간 창조 때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우리는 이렇게 창조된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정의합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말하는 모습은 단순한 외형이 아닌, 가장 심오한 본성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에서 종의 모습을 취합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종이 되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찬미가를 ‘비움’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케노시스(kenosis)로 부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찬미가에 앞서 이렇게 필리피 신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