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9월16일 가해 연중 제23주간 토요일(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7. 9. 16. 03:38


 

성 고르넬리오 교황 순교자

로마(Roma)의 사제이던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는 성 파비아누스(Fabianus)의 순교 이후 거의 14년 동안이나 지연되어 오던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황 선출이 지연된 것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룬 주요 업적은 박해 동안에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과의 화해 정책이다. 그는 배교자들의 합당한 통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한 반면, 배교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죄하고, 교회가 그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일파를 공격하던 카르타고(Carthago)의 주교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를 끝까지 옹호하였다.

 

 한편 그는 배교자를 용서하는 권한이 교회에는 없을 뿐더러, 이제 자신이 교황이라고 선언했던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와 그를 정점으로 모인 엄격파들을 단죄하여 교회의 평온을 회복하였다. 노바티아누스는 첫 번째 대립 교황이었다.

노바티아누스의 극단주의를 옹호하는 무리들은 재차 힘을 규합하였고, 동방에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코르넬리우스는 교회가 통회하는 배교자들을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재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코르넬리우스의 제의로 251년 10월에 개최된 서방 주교들의 시노드(Synod)는 노바티아누스 일파의 가르침을 단죄하고,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

황제 갈루스가 253년에 또 다시 그리스도교 박해를 재개하자, 그는 첸툼첼레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순교자로서 삶을 마감하였다.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200-210년경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유복한 이교 가정에서 내어난 성 타스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또는 치프리아노)는 수사학자이자 법률가였고 또 교사였다. 그는 246년경 속세의 불의와 부패에 회의와 실망을 느끼던 중 하느님의 은총으로 노사제인 코일리키우스(Coelicius)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즉시 당대의 저명한 성서학자이자 유명한 저술가가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후 그는 사제품을 받았고, 249년 초에 카르타고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249년에 일어난 데키우스(Deci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피신하였으나, 은밀히 피신처에서 편지 등을 보내는 방법으로 자기 교구를 계속 지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피신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251년에 교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교구민들이 박해 동안에 배교하였고, 또 자신의 주교 선임을 반대하던 사제 노바티아누스(Novatianus)가 이단에 빠져 있음을 알았다. 노바티아누스 신부는 배교한 신자들에게 아무런 회개 행위도 요구하지 않고 교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그의 지나친 관대함을 나무라고, 박해 당시 배교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규율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배교자를 제외하고는 새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 배교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유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51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성 코르넬리우스(Cornelius, 9월 16일)가 배교자들에게 관용과 용서를 베풀자, 노바티아누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배교자들은 영원히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배타적인 엄격주의자로 돌변하였다. 로마(Roma)의 주교로 선출될 것을 기대했던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대립교황으로 등장하며 이교적인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즈음에 성 키프리아누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가톨릭 교회 일치"(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와 "배교자들에 관하여"(De lapsis)를 저술, 배포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지 않고 교회 안에 일치를 이루도록 촉구하였다.

배교자 문제가 해결된 지 얼아 안 되는 252-254년 사이에 아프리카 지역에 몸서리치는 흑사병이 창궐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이를 물리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를 반대하는 이들과 신자들은 흑사병을 그리스도교와 성 키프리아누스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며 박해의 빌미로 삼았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 때문에 하늘이 분노하여 전염병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사람들의 낭설을 반박하고 위로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데메트리아누스에게"(Ad Demetrianum)과 "죽음에 대하여"(De mortalitate)라는 책을 썼다.

그 후 얼마 뒤에 그와 아프리카의 다른 주교들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와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황은 이단자들과 분리주의자들이 베푼 세례도 유효하다고 인정한 반면, 그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255년 성 키프리아누스는 지역 주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르타고에서 주교회의를 열고 이단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재세례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성 키프리아누스는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또 모든 주교와 사제와 부제들이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 예식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지방 총독인 파테르누스에 의하여 카르타고에서 50마일 거리에 있는 쿠루비스로 유배되었다.

 

 또 다음해에는 모든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렸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새 총독인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소환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끝까지 이교의 신에게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됨으로써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그는 교회, 사목, 성서, 성사 그리고 배교자 문제에 관하여 박해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13편의 저서와 65편의 서간들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강론   :   (루카 6,43-49)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내 말을 실행하여라.>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루카 6,43-44).”

이 말씀에서 ‘좋은 나무’는 진실한 사람,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나쁜 나무’는 위선자입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자신도 구원이라는 열매를 얻고,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위선자는 그 자신도 구원받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방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 23,27-28).”

‘회칠한 무덤’이 바로 ‘나쁜 나무’입니다.

그 자신도 부정하지만, 남을 부정 타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위선자들은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고,

자기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지금은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 라고 우겨도,

마지막 날에는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지금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 말씀입니다.

심판 때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회개해야 하고, 지금 바로잡아야 합니다.

제대로 회개한다면 ‘나쁜 나무’도 ‘좋은 나무’로 변화될 수 있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

이 말씀은 ‘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선한 것’은 ‘선한 말’을 뜻하는데, 신앙을 증언하는 말,

남을 용서하는 말, 축복하는 말,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말 등입니다.

‘악한 것’은 ‘악한 말’을 뜻하는데, 남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말,

저주하는 말, 미움을 드러내는 말, 사랑을 거스르는 말 등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말’에 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미와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야고 3,9-10).”

신앙인은 항상 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선한 말만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속마음과 다르게 입으로만 선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선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과 행실의 일치를 강조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6)”

예수님을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말만 잘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남이 볼 때에는 실천하지만, 아무도 안 볼 때에는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모습을 알 수 없고,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위선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엄격해도 자기 자신에게는 너그러울 때가 많고,

남의 변명은 안 받아주면서도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변명은 잘 받아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루카 6,47-49).”

여기서 ‘홍수’는 박해, 환난, 시련 등을 뜻하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을 뜻하기도 합니다.

 

평상시에는 기초 없이 맨땅에 지은 집이라는 것이 표시가 나지 않아도,

홍수가 닥치면 힘없이 무너짐으로써 기초가 없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처럼,

아무 일 없이 평화스러울 때에는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였던 사람도

어떤 위기가 닥치면 믿음이 흔들리거나 아예 믿음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박해가 닥치기 전에는 누가 순교자가 될지, 누가 배교자가 될지 모릅니다.

성인 같다고 칭찬과 존경을 받던 사람이 배교자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을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일입니다.

지금 자기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면서 살고 있는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아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늘 스스로 반성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는 예수님의 말씀이고, 또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말에 취하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냉정하고 엄격해져야 합니다.)

 

심판 날이 되면 놀랄 일이 많을 것입니다.

성인품에 오를 줄 알았던 사람이 하늘나라 밖으로 쫓겨나는 것을 볼 수도 있고,

영 시원찮게 보였던 사람이 예수님의 영접을 받으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선고가 예상과 달라서 깜짝 놀라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