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요한 3,14)
(요한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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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걷고 있었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고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생활이 너무 힘들어 불만에 가득 차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고 뱀에 물린 자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민수 21,8). 과연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친히 구리 뱀처럼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게 그분께서는 오직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고, 죽음을 넘어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오직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3,16).
그러나 그 선물은 화려하게 꾸며진 것도 고통 없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요. 십자가를 현양하려면 십자가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고통의 무게, 생명을 위한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때, 십자가를 통해 주님께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십자가 그 자체는 고통, 불의, 실패, 절망, 수치, 치욕, 파멸, 죽음 등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극진한 사랑과 섬김, 희생과 겸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십자가의 역설을 보여주셨지요.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생명이요 사랑이신 하느님의 그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십자가를 현양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십자가를 현양하려면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사랑으로 죽음을 삼켜야만 할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위한 예수님의 속죄 제사,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갈망하셨던 생명의 잔이고 영광이며,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마침표인 셈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지혜”(1코린 1,24)로서 하느님께 이르는 등불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서로의 고통에 눈길을 돌리고 함께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매순간 주님의 십자가를 현양하는 거룩한 날이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일 뿐임을 기억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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